울산 설영우 | 프로축구연맹 제공
프로축구 울산 현대는 최종전에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
아깝게 우승을 놓쳤던 2013년과 2019년은 최종전 패배가 빌미가 됐고, 17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2022년 역시 패배로 대관식의 빛이 바랬다.
올해는 달랐다. 3일 라이벌인 전북 현대를 호랑이굴(울산문수구장의 애칭)으로 불러들인 자리에서 1-0 승리로 2연패(連覇)를 자축했다. 사령탑인 홍명보 감독(54)이 “ 우승이라는 결과가 바뀌지 않는 만큼 선수들에게 즐겁게 뛰라”고 주문했던 것처럼 편안하게 라이벌전을 마쳤다.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골 폭죽은 많지 않았다. 울산 수비수 설영우(25)가 전반 32분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오른발로 침착하게 때린 것이 이날의 유일한 득점이자 결승골이 됐다. 설영우가 동료들을 한 자리에 모아 축구공을 마치 트로피처럼 들어올리는 골 세리머니를 펼친 것이 시상식을 미리 예고하는 듯 했다.
승기를 굳힌 울산은 득점왕을 확정지은 주민규(33) 밀어주기에 힘을 썼다. 주민규는 후반 4분 엄원상의 크로스를 받으려고 달려들었지만 발끝이 미치지 못했고, 2분 뒤에는 페널티지역에서 떄린 오른발슛이 골키퍼 정면을 향했다.
결국, 주민규는 대전 하나시티즌의 티아고와 함께 17골을 기록했지만 득점이 같을 경우 출전 경기 수(35경기)와 출전 시간(주민규 2620분·티아고 2820분)을 따지는 규정에 따라 생애 두 번째 득점왕이 됐다. 주민규가 지난해에는 정반대로 전북의 조규성(미트윌란)과 17골로 같았지만 6경기를 더 뛰어 득점왕을 뺏겼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상황이 됐다.
주민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처럼 공동 수상해도 좋겠지만 희소성도 생각해야 한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고 말했다.
울산은 후반 25분 엄원상이 크로스바를 때리는 골대 불운에 아쉬움을 삼켰지만 승리로 대관식을 마무리했다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관중석을 메운 2만 8368명이 쏟아내는 함성이 울산의 축제를 더욱 빛냈다.
옥에 티라면 축제 같았던 이 무대에서 큰 부상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울산이 1-0으로 앞선 전반 41분 전북의 프리킥 찬스에서 골키퍼 조현우가 공중볼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전북 수비수 홍정호와 충돌했다.
의도한 반칙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현우가 두 손으로 홍정호의 머리, 무릎으로는 가슴 부위를 가격해 의식을 잃고 말았다. 앰뷸러스로 인근 병원에 후송된 홍정호는 의식은 되찾았지만 갈비뼈 골절이 의심되고 있다. 라이벌의 우승을 힘없이 바라보며 패배한 전북에는 더욱 속이 쓰릴 수밖에 없는 하루가 됐다.
K리그 최고의 명가로 불리던 전북은 이날 패배로 4위가 확정돼 자존심을 구긴 터였다. K리그1 최다 우승팀(9회)인 전북이 4위로 밀려난 것은 2008년 이후 처음이다. 4위로 시즌을 마친 전북은 2024~2025시즌 신설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가 아닌 아시아챔피언스리그2에 참가하는 아쉬움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