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2부 강등’ 수원 삼성
K리그1 최종전 강원과 무승부
최하위로 ‘다이렉트 강등’ 굴욕
모기업 제일기획 지원 삭감 여파
선수단 보강 미흡 경쟁력 하락
사령탑 3명 교체 ‘미봉책’ 급급
울산 주민규 17골 ‘득점왕’ 등극
1995년 창단한 수원 삼성은 K리그1 우승 4회,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 5회,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2회 등 빛나는 ‘명문 구단’이다. 새가 날개를 펼친 모양을 가진 홈구장 수원월드컵경기장 ‘빅버드(Big Bird)’는 ‘축구 수도’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축구 팬들에게 성지로 여겨진다. 수원 팬들도 어느 구단 못지않게 열성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2023시즌 수원 빅버드에 어느 때보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었다. 수원이 창단 이후 처음으로 K리그2(2부리그)로 강등되는 굴욕을 맛본 것이다. 추운 겨울을 뜨겁게 달구던 수원 팬들의 응원 열기는 곧바로 침묵과 분노로 뒤바뀌었다. 프로축구 역사에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이는 모기업의 저조한 투자와 올해 잦은 사령탑 교체 등 혼돈의 시간을 보낸 수원의 예고된 몰락이었다.
팬들이 던진 홍염 앞… 고개 숙인 선수들 수원 삼성 선수들이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K리그1 38라운드 강원FC와 경기에서 0-0으로 비겨 2부 강등이 확정된 뒤 관중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앞으로 분노한 팬이 그라운드에 던진 홍염으로 인해 붉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
수원은 지난 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K리그1 최종 38라운드 홈 경기에서 강원FC와 0-0으로 비겼다. 최하위(승점 33)에 머물며 시즌을 마친 수원은 승강 플레이오프(PO) 기회를 잡지 못하고 ‘다이렉트 강등’을 당했다. 다음 시즌은 K리그2에서 경쟁하며 승격을 노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글로벌 기업 삼성을 등에 업고 1995년 닻을 올린 수원은 K리그에서 1998, 1999, 2004, 2008년 우승했고, 2002, 2009, 2010, 2016, 2019년에는 FA컵을 들어 올리는 등 한때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와 비교되며 ‘레알 수원’이란 화려한 수식어도 얻었다.
하지만 수원의 몰락은 조금씩 시작됐다. 모기업이 삼성전자에서 제일기획으로 이전되면서 지원이 대폭 줄었고 선수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전력이 약화하고 있었다. 2015년 리그 2위에 올랐던 수원은 2019년 8위로 추락한 뒤 2020년 8위, 2021년 6위에 머물렀다. 지난해엔 10위로 2013년 승강제 도입 후 처음으로 승강 PO를 치어 힘겹게 K리그1에 잔류했다.
수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명예 회복을 다짐했지만 감독만 여러 차례 교체하는 등 안일하게 선수단을 운영했다. 수원의 잔류를 이끈 이병근 감독 체제에서 베테랑 김보경과 브라질 미드필더 바사니 등을 영입해 전력을 보강했지만 시즌 초반부터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최성용 코치에게 대행을 맡겼지만 달라지지 않았고, 야인이던 김병수 감독에게 수차례 러브콜을 보낸 끝에 지휘봉을 맡겼다. 기대했던 김병수 감독도 20경기에서 4승(5무11패)에 그치고 9월 말 경질됐다. 이후 염기훈 감독대행 체제를 꾸린 수원은 시즌 막바지 2연승을 달려 잔류 희망을 살렸으나 끝내 2부로 내려앉았다. 이렇게 올해만 사령탑 4명의 손을 거치며 시즌 내내 방황한 수원이었다. 염 대행은 “경기장에서 뛰는 건 선수들인데, 너무 많은 변화가 있어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구단의 첫 강등을 두 눈으로 지켜본 2만4932명의 홈팬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빅버드를 수호하던 팬들이 경기가 끝난 뒤 던진 홍염으로 그라운드에 붉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수십 명의 팬은 구단 사무실로 향하는 입구 쪽에서 고성을 지르며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또 구단 버스가 나가는 길을 약 2시간 동안 가로막아 분노를 표출했다.
한편 이번 시즌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이 조기 우승을 확정한 가운데, 득점왕의 주인공은 울산의 주민규로 확정됐다. 대전 티아고는 이날 FC서울전에서 한 골을 추가하며 시즌 17골을 기록해 주민규와 동률을 이뤘지만, K리그 규정에 따라 주민규(2543분)의 출전 시간이 티아고(2730분)보다 적어 득점왕 타이틀은 주민규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