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울산/이재범 기자] “감독님께서 이미 경기를 네가 망쳤으니까 네가 끝까지 망치고 경기를 끝내라고 하셨다. 끝까지 망치고 책임지라고 하셨다(웃음).”
고양 소노는 3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정관장 프로농구 원정 경기에서 울산 현대모비스를 71-66으로 꺾고 4연승을 달렸다. 4승 8패로 승률 33.3%였던 소노는 이번 4연승으로 8승 8패를 기록하며 공동 5위로 2계단 더 도약했다.
힘겨운 승부였다. 전반까지 3점슛 9개를 터트리며 42-34로 앞섰던 소노는 후반에는 3점슛 침묵에 빠졌다. 3쿼터에서 10-21로 열세에 놓여 역전까지 당한 소노는 4쿼터에만 9점을 올린 이정현을 앞세워 역전승을 거뒀다.
소노는 치나누 오누아쿠(22점 14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 2블록)와 함께 이정현(16점 6리바운드 4어시스트 2스틸)이 있었기에 연승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이정현은 이날 승리한 뒤 “연승 중이었는데 (연승을) 이어 가서 굉장히 기쁘다”며 “우리 플레이를 너무 못했다. 나도 잘한 걸 평가할 게 없을 정도로 못해서 많이 아쉽다. 그럼에도 이렇게 승리한 게 운이 좋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음에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자 이정현은 “수비 부분이다. 슛이 안 들어가고 공격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는데 안정감 있게 수비가 성공된 게 (승리한) 이유다”며 “오누아쿠가 와서 수비가 점점 안정된다. 앞선과 뒷선 선수들이 더 강하게 나갈 수 있어서 그런 게 모여서 승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수비를 꼽았다.
김승기 소노 감독은 “오누아쿠가 와서 수비 숨통이 열린다”고 했다.
이정현은 오누아쿠 수비 효과를 묻자 “오누아쿠가 골밑에서 1대1로 너무 잘 막아주고 리바운드와 블록 능력이 좋아서 슛을 최대한 안 주고 골밑으로 몰아주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외곽으로 빼주는 패스를 스틸 할 확률도 높아진다”며 “오누아쿠와 데이비스가 골밑에 있어서 그런 수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정현은 현대모비스와 경기에서 강하다. 지난 1라운드 맞대결에서는 3점슛 7개를 모두 성공하며 34점 7리바운드 12어시스트로 활약했다. 이날은 부진했다고 해도 4쿼터에서는 두드러졌다. 특히, 소노가 후반 13개의 3점슛 중 1개 성공했는데 그게 이정현의 손에서 나왔다. 더구나 69-59로 달아나는 결정적인 한 방이었다.
이정현은 4쿼터에서는 돋보였다고 하자 “동료들, 코칭스태프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다운 플레이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서 되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며 “오누아쿠가 픽을 걸어준 뒤 (내가) 슛을 던졌는데 그게 안 들어갔을 때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오누아쿠가 미안해 하지 말라며 또 던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감독님께서도 고개를 갸웃하면서 또 던지라고 하셨다. 코치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지막 중요한 3점슛을 자신있게 던질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어 “감독님께서 이미 경기를 네가 망쳤으니까 네가 끝까지 망치고 경기를 끝내라고 하셨다. 끝까지 망치고 책임지라고 하셨다”며 웃은 뒤 “동료들이나 코칭스태프의 말 한마디, 믿음 덕분에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감 있게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정현은 지난 시즌 김승기 감독에게 가장 많이 혼나는 선수였다. 이번 시즌에는 어떨까?
이정현은 “(지난 시즌 100이라면) 지금은 10 정도다(웃음). 오늘(3일) 진짜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도 아무 말씀을 안 하셨다. 꺼꾸로 간다고만 하셨다. 지난 시즌에는 매 경기 듣던 말씀이다. 크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라며 미루지 말라고 하셨다. 이미 망쳤다고(웃음)”라며 “오늘 경기는 못 하고 있고, 슛감이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느꼈다. 지난 시즌이었다면 소극적으로 로슨이나 전성현 형(에게 패스를) 주고 코너에 있었을 거다. 그게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플레이가 안 되어도 중요한 순간 책임감을 가지고,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 지난 시즌에는 부족했다. 숨어 있었는데 이번 시즌에는 플레이도 잘 되면서 그런 부분에서 성장을 한다”고 했다.
이정현은 시즌 초반 3경기에서 부진했다. 그 이유가 국가대표에서 차출되어 오프 시즌을 팀에서 소화하지 못한 영향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었다.
이정현은 “대표팀에서 운동을 아무리 많이 하고, 휴식을 취해서 체력이 있었어도 경기 체력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컵대회에서도 한 경기만 뛰었다. 경기 감각이나 경기 체력이 너무 부족했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 경기력은 알아서 좋아질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부분이 되게 컸다. 초반에 3경기 정도는 뛰는데 완전 경기 감각이 없었다. 치고 나갈 때, 돌파할 때, 슛을 던질 때 하나도 내 타이밍을 못 잡았다. 그게 가장 큰 요인이다”며 “지난시즌에는 연습경기만 하면 40분을 뛰었다. 못 뛰어다녀도 40분씩 뛰었기에 시즌 때 35분에서 40분 사이를 뛰어도 하나도 안 힘들었다. 이번 오프시즌에는 (그렇게 하지 못한) 그런 게 가장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