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 김기동 감독,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이 경기에 앞서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제공
감독 장악력은 모든 단체 종목에서 중요하다. 20년 이상 축구를 취재한 기자는 축구 감독 장악력이 다른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유는 △희소성 높은 골로 승부가 갈리는 특성 △다른 단체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플레이 스타일 △소수 선수의 순간적인 태업이 승부를 가를 수 있음 △계속 흐르는 시간 속에 실수를 용인할 수 없는 정확한 판단력이 필요함 △한정된 교체인원과 횟수, 교체선수 재투입 불가 등 선수 교체에 대한 제한성 때문이다. 한 마디로 종합하면, 감독이 경기장 안에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다른 단체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그래서 감독들이 새로운 팀으로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노장 정리다. 자기 철학과 리더십에 수긍하는 베테랑들은 안고 가지만 머리가 크고 스타가 됐다고 반항할 기미가 보이는 노장은 내보낸다.
올해 K리그를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선수단에 대한 감독 장악력이 강한 팀이 좋은 성적을 냈다. 홍명보 감독이 휘어잡은 울산 현대는, 아주 인상적인 시즌은 아니었지만, 리그를 2연패했다. 여러 위기도 있었고 연패도 당했지만 울산은 2위 포항 스틸러스를 승점 12나 따돌린 넉넉한 챔피언이 됐다.
포항도 김기동 감독에게 꽉 잡혀 운영됐다. 김 감독은 2016년부터 코치로 일했고 2019년 감독이 됐다. 앞서 포항에서 10년 동안 뛰었다. 유스시스템, 선수단 운영법, 모든 선수들의 과거사까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철저한 선수 파악과 뛰어난 판단력 앞에 선수들은 순종했다.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이정효 감독도 광주FC를 휘어잡았다. 제주 코치에서 광주 감독으로 선임된 2022년 팀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곧바로 2부 정상으로 이끌며 1부 승격권을 따냈다.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자율과 책임을 주면서도 무척 냉정하게 관리한다. 골과 내일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집념은 선수들을 뛰고 또 뛰게 만들었다.
2부리그 챔피언 정정용 김천 상무 감독은 과거 연령대별 대표팀 감독 시절 인연을 맺은 상무 선수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했다. 김포FC 고정운 감독도 자신이 뽑은 무명 선수들을 강한 지배력을 앞세워 확실하게 조련했다. 김포는 2부 참가 2년 만에 3위에 올랐다. 그것도 2부 구단 중 거의 최소연봉을 받는 선수단을 이끌고 말이다.
하위권에 머문 팀들은 감독 장악력이 약했다. FC서울 안익수 감독은 시즌 도중 충동적으로 팀을 떠났다. 수원 삼성은 사령탑을 계속 바꿨지만 강등을 막지 못했다. 가까스로 1부에 잔류한 수원FC도 김도균 감독이 선수단을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이랜드는 박충균 감독을 선임 1년 만에 경질했다. 안산은 스카우트 파문 중 전남 드래곤즈 수석코치를 감독으로 앉히는, 동업자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무례수’를 뒀지만 결국 꼴찌를 했다. 천안은 프런트 내부 문제에다, 각종 외압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 때문에 선수단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
단체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감독의 선수단 장악력이 가장 기본이다. 알렉스 퍼거슨, 팝 과르디올라, 조세 무리뉴, 위르겐 클롭, 거스 히딩크 등 과거 또는 현재 큰 업적을 이룬 지도자들은,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어떻게 해서든 팀을 장악했다. 감독의 장악력은 감독 리더십만으로 결코 가질 수 없다. 선수단 팔로워십이 리더십과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좋은 성과는, 축구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서, 리더십과 팔로워십이 강력하게 융합돼야만 거둘 수 있다. 결국, 성적에 대한 책임은 궁극적으로는 감독에 있지만 적잖은 부분에서 베테랑들에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