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가 12일(한국시각) 오타니 쇼헤이와 10년 계약을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진=MLB.com노모 히데오는 1995년 LA 다저스에 입단해 신인왕에 올랐다. AP연합뉴스[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한국과 일본의 메이저리그 도전 역사의 뿌리는 각각 박찬호, 노모 히데오다.
한양대 2학년이던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동기 대런 드라이포트와 함께 메이저리그에 직행했지만, 빅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한 채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2년간 기량을 갈고 닦은 뒤 1996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올라서며 코리안 메이저리거의 찬란한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노모는 일본 프로야구(NPB) 긴테츠 버팔로스에서 5년을 활약한 뒤 1995년 다저스에 입성해 특유의 비트는 투구폼으로 '토네이도 열풍'을 일으키며 신인왕에 올랐고 이후에도 두 차례 노히터를 연출하며 메이저리그를 누볐다. 박찬호는 124승, 노모는 123승으로 메이저리그 동양인 투수 다승 1,2위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박찬호와 노모. 스포츠조선 DB박찬호를 포함해 이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한국인 선수는 총 26명이다. 일본인 메이저리거는 그 두 배인 51명에 이른다. 1964년 난카이 호크스 투수 무라카미 마사노리가 '교환 학생'의 개념으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해 2년을 뛰기는 했지만, 노모가 NPB를 미국에 본격적으로 알린 일본인 선수라고 봐야 한다.
노모 이후 메이저리그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일본인 선수는 이치로 스즈키, 마쓰이 히데키, 사사키 가즈히로, 구로다 히로키, 마쓰자카 다이스케, 다르빗슈 유, 다나카 마사히로 등 끊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오타니 쇼헤이가 일본인 메이저리그 도전 역사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148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독보성(uniqueness)과 희귀성(rarity)이라는 표현을 붙일 수 있는 선수는 베이브 루스와 오타니 둘 뿐이다. 오타니는 산업 전반을 통틀어 일본이 미국에 수출한 가장 가치있는 상품이다. 100여년 전 루스는 지명타자가 없던 시절 투타 겸업의 위대함을 모르고 뛴 선수다.
오타니는 지난해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규정이닝과 규정타석을 모두 채웠다. 투수로는 에이스, 타자로는 중심타자 거포다. 이런 예는 없었다.
그는 LA 에인절스에서 6시즌 동안 2021년과 올해 두 차례 MVP에 선정됐다. 만장일치로 두 번 MVP에 오른 선수도 오타니가 유일하다. 지난 9월 생애 두 번째로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지만, 상품 가치는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FA 시장에서 10여개 구단이 5억달러 이상의 계약을 제안했다고 한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도 6억~6억5000만달러를 파이널 오퍼로 그의 마음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오타니는 우승 전력, 미국 대륙 서부, 돈, 편안함 등 모든 조건에서 LA 다저스 만한 구단이 없다고 판단했다. 10년 7억달러는 메이저리그를 넘어 전세계 스포츠 역사에서 최대 규모다.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의 6억7400만달러를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