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 대한항공의 경기에서 우리카드 한태준이 공을 올리고 있다./뉴시스
“배구는 세터(setter)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세터는 공격수에게 공을 띄워주는 역할을 하는 포지션으로, 아무리 뛰어난 공격수가 있어도 세터가 약하면 강팀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팀 전체를 진두지휘하기 때문에 야구의 포수, 미식축구의 쿼터백과 종종 비교된다.
올 시즌 한국 남자 프로배구에서 이 세터 분야에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우리카드 한태준(19)이다. 수원 수성고 졸업을 앞두고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입단한 프로 2년 차. 데뷔 시즌 벤치 멤버로 18경기 45세트에 출전에 그쳤던 그는 올해 주전 자리를 꿰찼다. 7팀 주전 세터 중 최연소. 대한항공 한선수(38)와 열아홉 살 차이다.
우리카드 세터 한태준(오른쪽)이 지난달 30일 V리그 대한항공전에서 토스하고 있다. /박재만 스포츠조선 기자
일단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카드가 공격력 보강을 위해 KB손해보험에 주전 세터 황승빈을 내주고 아웃사이드 히터 한성정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 그래도 2년 차 10대에게 지휘자 역할을 맡긴다? 그 배후에는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 조련술이 있다. 신영철은 한국 남자배구 명세터 계보를 이은 인물. 그는 신인 드래프트 때부터 한태준을 “즉시 전력감”으로 봤고, “조금만 훈련시키면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과감한 발탁 이유를 설명했다. 올 시즌에도 작전 타임 때마다 한태준에게 속성 과외를 해주고 있다. “아직 경험이 적기 때문에 경기 중 흐름을 읽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한태준은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4일 현재 13경기 48세트를 소화한 그는 세트당 평균 12.438개 세트를 성공시켜 이 부문 리그 전체 1위다. 지난 시즌 1위 황택의(당시 KB손해보험·현 상무) 10.604개보다 많다. 단순히 성공 횟수만 많은 게 아니다. 공격 패턴도 다채롭다. 오픈 공격(21.3%), 퀵오픈(31.8%), 후위 공격(24.8%) 등 다양한 경로로 공을 뿌린다. 마테이 콕(공격 점유율 43.91%), 김지한(24.06%), 한성정(12.72%) 등 팀 공격수들을 골고루 활용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제 2004년생이 곽명우(32·OK금융그룹), 황승빈(31·KB손해보험), 노재욱(31·삼성화재), 하승우(28·한국전력)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신 감독은 “토스의 구질이 가볍다”고 평가했다. 공격수들이 편하게 공을 때릴 수 있도록 정확한 방향과 각도로 올려준다는 뜻이다. 반면, 자신에게 어렵게 오는 공을 컨트롤하는 능력과 속공 토스를 더 향상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감독은 “키(180cm)는 작지만, 대한항공 한선수처럼 리그 대표 세터는 물론, 국가대표 세터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면서 “지금 시기에 스스로 얼마나 연구하고 훈련하는지에 따라 반짝 선수로 남을지 새 역사를 쓸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