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대표하는 베테랑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37). 프랑스 A대표팀 역대 최다 골(54골) 기록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다. 그런 지루가 10일 낯선 이력을 하나 추가했다. 지난주 최고의 활약을 펼친 골키퍼로서 이탈리아 세리에A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늘 공격수로만 뛰었던 지루에게 지난주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세리에A AC밀란 소속인 지루는 지난 8일 제노아전 원정길에 올랐다. 지루는 0-0 상황인 후반 21분 교체 투입됐다. 후반 43분 AC밀란 크리스천 풀리식(25·미국)이 고대하던 골을 넣었다. 승기를 잡은 AC밀란에 변수가 생겼다. 골키퍼 마이크 메냥(28·프랑스)이 후반 추가시간 8분에 무리한 수비를 펼치다가 상대 공격수 머리를 무릎으로 가격하며 레드카드를 받았다. AC밀란은 이미 교체 카드 5장을 다 써버린 상황. 결국 그라운드 중 한 명이 골문을 대신 지켜야 했고, 경험 많은 백전노장 지루가 메냥의 땀으로 젖은 유니폼 상의를 입고 골키퍼 장갑을 꼈다.
세리에A AC밀란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가 8일 제노아전 원정 경기에서 골키퍼를 맡아 분투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남은 시간은 1분 남짓이었지만,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지루가 제대로 선방하지 못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퇴장과 함께 얻어낸 제노아의 프리킥에서 지루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굴절된 공은 크로스바에 맞고 튕겨 나왔다.
자신감이 붙은 제노아는 공격수 숫자를 늘려 밀어붙였다. 그리고 마침내 제노아는 수비를 전부 제쳐내고 골키퍼 지루와 1대1 찬스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때 지루가 아무도 예상 못 했던 움직임을 보여줬다. 날렵하게 몸을 날려 공을 쳐냈고, 뒤로 흐른 공을 끌어안았다. 제노아 공격수가 공을 건드리지도 못한 완벽한 수비였다. 그렇게 경기가 끝났고 동료들은 지루에게 몰려와 그를 안으면서 함께 환호했다. AC밀란은 지루의 대활약을 앞세워 승점 21(7승1패)로 세리에A 선두를 질주했다. 지루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가 키가 제일 커서 골키퍼 자리에 들어간 것 같다”며 “선방할 때 골을 넣을 때만큼이나 대단한 기분이었다”고 했다.
드라마 같은 결말에 팬들도 환호했다. AC밀란은 지루의 이름이 쓰여 있는 골키퍼 유니폼을 이벤트성으로 팔기로 했는데, 하루도 안 돼 매진됐다. 리그 사무국에서 활약도 인정받았다. 10일 발표한 세리에A 8라운드 베스트11 골키퍼 자리에 지루의 이름을 올린 것이다. 사무국은 “AC밀란의 새 골키퍼 지루가 놀라운 선방으로 승점 3을 안겼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올리비에 지루가 8일 골키퍼까지 맡으며 제노아전을 승리로 이끌고 환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비슷한 상황에서 필드 플레이어가 장갑을 끼는 경우는 드물지만 가끔 나왔다. 그중에도 공격수가 골문을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유럽 축구에서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14년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리그. 당시 토트넘 소속이었던 잉글랜드 최고 공격수 해리 케인(30)이 그리스 아스테라스 트리폴리스와의 경기에서 골키퍼 장갑을 낀 적이 있다. 이미 5-0으로 승부가 기울었을 때였고, 케인은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을 완벽히 처리하지 못하며 1골을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