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를 흔히 ‘세터놀음’이라고 한다. 공격 과정에서 리시브와 공격은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여럿이지만, 두 번째인 토스는 리시브가 흔들려 세터가 물리적으로 갈 수 없는 거리에 올라올 경우가 아니면(때로는 가까이에 있는 공격수가 있어도 세터가 전력질주해 토스를 올리기도 한다), 세터가 올리기 때문이다. 세터가 어떤 루트의 공격을 택하느냐에 따라, 어떤 빠르기와 높낮이로 공을 올리느냐에 따라 경기 양상은 180도로 달라진다.
폰푼
6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V리그 여자부 3라운드 GS칼텍스와 IBK기업은행의 경기는 세터의 역량에 의해 갈렸다. 이날 경기 전까지 순위는 GS칼텍스가 승점 22(8승5패)로 3위, IBK기업은행이 승점 16(6승7패)으로 5위였지만, 이날만큼은 IBK기업은행의 우위였다.
GS칼텍스는 프로 4년차로 안혜진의 부상으로 올 시즌 시작부터 붙박이 주전 세터로 도약한 김지원이 흔들렸다. 경기 전 김지원에 대해 차상현 감독은 “아직 풀타임 주전을 해본 적이 없어서 흔들린다. 충분히 예상한 바이지만, 잘 될 때와 흔들릴 때의 갭이 줄었으면 하는데, 경험하며 성장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지원
차 감독의 바람과는 반대로 김지원은 이날도 토스워크가 심하게 흔들렸다. 토스를 올리기 전에 어느 곳으로 줄지 미리 노출되는 모습도 나왔다. 1세트를 내주고, 2세트도 열세를 보이자 차 감독은 김지원을 벤치로 불러들이고, 올 시즌 입단한 신인 이윤신을 투입했다. 이윤신은 김지원에 비해 미들 블로커의 속공 활용을 더 빈번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잠재력을 드러내긴 했지만, 양 날개로 올리는 토스가 짧은 경우가 왕왕 나왔다. 이윤신을 내세워 2세트를 잡았지만, 3세트를 내준 GS칼텍스는 4세트까지 이윤신을 선발 투입했지만, 세트 중반 다시 김지원을 투입해야 했다.
이윤신
반면 IBK기업은행은 아시아쿼터 1순위로 팀에 합류한 폰푼 게드파르드를 줄곧 기용했다. 경기 전 김호철 감독은 “아직 폰푼과 공격수 간의 호흡이 100%가 아니라서 세트마다 기복이 심하다”라고 했지만, GS칼텍스의 김지원-이윤신에 비해서는 훨씬 안정적이었다. 지난 2일 정관장전에서는 아베크롬비의 점유율을 30% 아래로 떨어뜨리며 국내 선수들도 골고루 활용하는 모습이었던 폰푼은 이날은 아베크롬비의 점유율을 대폭 늘렸다. 아베크롬비의 공격 성공률이 경기 내내 50%를 상회할 만큼 컨디션이 좋았기 때문에 폰푼은 아베크롬비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폰푼 특유의 낮고 빠른 토스에 IBK기업은행의 공격수들도 시즌 초반에 비해선 훨씬 적응한 모습이었다.
폰푼이 경기 내내 자리를 지킨 IBK기업은행은 두 세터가 교대로 코트를 들락날락해야 했던 GS칼텍스를 세트 스코어 3-1(26-24 26-28 25-21 25-20)로 잡고 2연승을 달렸다.
폰푼(왼쪽), 최정민
폰푼과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GS칼텍스의 낮은 사이드 블로킹을 적극 공략한 아베크롬비가 양팀 통틀어 최다인 42점(공격 성공률 52.63%)을 몰아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토종 에이스 표승주도 16점(41.67%)을 올리며 아베크롬비를 보좌했다. 180cm의 단신에도 이날 경기 전까지 세트당 0.922개의 블로킹을 잡아내 이 부문 1위에 올라있던 최정민은 이날도 블로킹 6개를 잡아냈다. 55세트, 53개의 블로킹으로 세트당 1개의 고지도 멀지 않았다.
승점 3을 쌓으며 승점 19이 된 IBK기업은행은 시즌 전적도 7승7패로 5할 승률에 올라섰다. 순위도 한 경기 덜 치른 정관장(승점 17,5승8패)을 제치고 4위로 한 단계 올라섰다. 반면 이날 화성을 시작으로 원정에서만 연속 6경기를 치러야 하는 GS칼텍스는 2연패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