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에서 코트 가운데에서 블로킹과 속공을 전담하는 미들 블로커는 신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포지션이다. 2009~2010시즌부터 2019~2020시즌까지 블로킹 부문 11연패를 달성하는 등 블로킹 부문 1위만 12번을 차지한 현역 최고의 미들 블로커인 양효진(34·현대건설)의 신장이 190cm다. 압도적인 신장과 위치 선정을 앞세워 양효진은 V리그 미들 블로커의 교과서로 꼽힌다.
3라운드가 진행 중인 2023~2024 V리그 여자부 블로킹 부문 1위는 양효진이 아니다. 6일 기준 양효진은 세트당 0.898개로 이 부문 2위를 달리고 있다. 양효진을 제치고 블로킹 부문 1위에 올라 있는 선수는 IBK기업은행의 프로 4년차 최정민(21)이다. 최정민은 6일 기준 세트당 0.964개의 블로킹을 잡아내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최정민의 신장이 양효진보다 10cm나 작은 180cm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불과 1~2cm 차이로 블로킹이 되느냐, 터치아웃이 되느냐가 갈리는 배구에서 단신인 최정민이 블로킹 1위에 올라있다는 것은 그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최정민은 지난 6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열린 GS칼텍스전에서도 블로킹 6개를 잡아내며 IBK기업은행의 세트 스코어 3-1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56세트를 소화해 53개의 블로킹을 잡아낸 최정민은 세트당 블로킹 1개의 벽을 돌파할 수도 있는 페이스다.
최정민의 성장세가 더욱 놀라운 것은 최정민은 고교 때까지 미들 블로커를 전문적으로 소화한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마추어 무대 특성상 재능이 있는 선수들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기도 하지만, 최정민은 한봄고 재학 시절엔 주공격수로 뛰었다. 본격적인 미들 블로커로의 전향은 프로 데뷔 후 이뤄졌다.
IBK기업은행의 김호철 감독
IBK기업은행의 김호철 감독과 동료들도 최정민의 성장세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김 감독은 “(최)정민이가 단신이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를 만회할 수 있는 타고난 민첩성이나 점프력을 갖추고 있다.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최정민을 프로 입단 때부터 지켜봤던 표승주는 최정민의 올 시즌 맹활약 비결에 대해 “감독님이나 코칭스태프들이 주문하고 조언해주는 것들을 열심히 시도해보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IBK기업은행 표승주
IBK기업은행의 미들 블로커 라인은 올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김수지가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면서 7개 구단 중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정민의 대들보 같은 활약 덕분에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됐다. 표승주도 “(최)정민이가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는 생각에 ‘더 잘 해야해’라는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는데, 그런 마음들이 정민이를 성장시키고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신이어도 도로공사의 (배)유나 언니 같은 좋은 미들 블로커가 될 수 있다. (최)정민이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후배를 독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