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KBO리그는 2024 시즌 격변의 시대를 맞이한다. '팬 퍼스트'를 강조하는 허구연 총재가 결단을 내렸다.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 일명 로봇심판과 피치클락 제도를 전격 도입하기로 했다. 스트라이크, 볼 판정 논란을 줄이고 지나치게 긴 경기 시간을 줄이자는 의도다.
생소하게 바뀐 제도. 가장 빠른 적응이 필요한 사람이 바로 심판이다.
KBO는 4일부터 8일까지 이천베어스파크에서 심판위원회 1차 동계훈련을 진행중이다. 7일 오후 취재진에 현장을 공개했다. 관심사인 로봇심판에 대해 간접 체험을 해볼 수 있었다. 심판들의 평가도 들어볼 수 있었다.
▶존은 어떻게 설정되느냐
스트라이크존 높이는 타자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의 중간점부터 무릎 아래 사이다. 무릎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넓어졌다. 넓이는 홈플레이트를 걸치는 공이다.
높낮이는 타자의 체형과 타격폼에 따라 상대적이다. 과연 로봇심판은 이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기계처럼 딱 정해진 존을 통과해야 스트라이크가 아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로봇심판 역시 타자마다 존이 다르다. 타격 영상 등을 근거로, 타자가 공을 임팩트하는 순간의 존을 자료로 입력한다. 서있는 폼은 달라도, 타격 시 자세는 몸이 약간 웅크리기 때문에 일정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선수의 키, 타격 대기 자세 등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면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하나. 갑자기 대체 선수로 영입된 외국인 선수, 1군 경험이 전혀 없는 신인급 선수가 경기에 들어선다면 어떻게 될까. 이 선수들은 축적된 데이터가 없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습 스윙을 하는 영상 하나만 있더라도 곧바로 존 설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질감은 없다
포수가 거의 공을 받자마자 심판의 우렁찬 콜이 나왔다. 실제로 본 로봇심판은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힌 후 한참 지나고 콜이 이뤄지는 지연 판정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걱정은 다른 부분에서 해야할 듯 하다. 1, 3루 쪽과 전광판 쪽 3대의 카메라로 로봇심판이 작동되는데 카메라 시야에 방해가 있으면 판정에 오류가 날 수 있다. 예를 들면 극단적 전진 수비를 할 때 카메라가 수비수의 몸에 가려지는 등의 문제다.
심판들의 적응도 필수 요소다. 지금은 신호를 3가지 버전으로 받고 있다.
'스트라이크-볼'이라고 명확히 들리는 게 아니면 스트라이크는 크고 긴 음, 볼은 작고 짧은 음으로 차별화 하는 방법이다. '스트라이크-볼'이 가장 정확하지만 그러면 판정이 지연된다. 음의 차별이 현실적으로 정답일 수 있는데, 문제는 심판도 긴장을 하거나 박빙 상황 관중들의 환호성이 너무 클 경우 심판이 이 소리에 혼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몇 시간째 집중을 하다 9회말 2사 마지막 상황에서 환청 같이 음이 들리면 경기를 망칠 수 있다.
더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폰을 수시간 착용하면 귀가 아플 수도 있다. 집중력 방해 요소다. KBO는 훈련과 실전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라도 스트라이크와 볼 사인만큼은 확실히 들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땅에 박힌 공이 스트라이크가 된다
이날 훈련 도중 눈에 띈 것, 낮은 커브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것이다. 포수가 공을 받는 순간에는 분명 미트가 땅에 닿을 정도로 낮은데, 일관되게 스트라이크 콜을 했다. 포수 미트에 닿기 전,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는 뜻이다.
로봇심판 도입 후 가장 혼란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다. 오히려 높은 커브를 포수가 좋은 프레이밍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일은 없어졌다. 슬라이더가 흘러나가 포수가 홈플레이트 바깥쪽에서 잡더라도 스트라이크가 될 수 있다. 일단 포수가 잡는 위치를 보게 될 팬들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수 있다.
이날 교육에 참가한 한 심판은 "직구는 내 생각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커브가 좋은 투수라고 가정하면, 땅에 박히는 공도 스트라이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훈련을 지휘한 허운 심판위원장은 "현장에 팬들이든, TV중계를 보는 팬들이든 이 공이 왜 스트라이크인지 근거를 제시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