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일레븐=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 피치 피플
김판곤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지금 동남아 축구판에서 가장 핫한 이름 중 하나는 단연코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한국인 사령탑 김판곤 감독일 것이다. 한때 아시아 축구의 강호였던 화려했던 명성을 잃고 동남아시아에서도 정상급 위치를 잃고 표류하던 말레이시아가 김 감독의 손을 타고 다시금 강성한 면모를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가 이를 말하고 있다. 김 감독은 부임 직후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본선 진출을 이루어냈다. 최근에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키르키스스탄전서 드라마틱한 4-3 역전승을 이루어내더니 대만 원정에서도 1-0으로 승리했다. 아시아 2차 예선에서 포트 3팀 중 그룹 1위를 달리고 있는 팀은 김 감독의 말레이시아가 유일하다. 이런 승전보는 한국에도 시시각각 전달되어 그의 지도력을 감탄하는 이들이 무척 많다.
<베스트 일레븐>은 말레이시아의 심장부 쿠알라룸푸르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은 담담하지만 강한 자신감과 철학이 담긴 어조로 이국에서 쓰고 있는 신화에 대해 담담히 되돌아봤다. 그 얘기를 조금씩 전한다.
- ①편에서
외국의 대표팀 감독으로 산다는 것
공교롭게도 인터뷰 2일 전 이웃나라 태국은 알렉산드레 마누 푈킹 감독을 경질했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다. 김 감독은 "이번 태국 감독 관련 소식을 접하고 정말 놀랐다"라고 말했다. 그럴 만했다. 두 경기를 끝낸 현재 태국은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그룹에서 한국에 이어 조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첫 경기였던 홈 중국전에서 패했다는 이유로 칼을 뽑아든 것이다. 심지어 푈킹 감독은 두 번이나 '동남아판 월드컵'이라는 AFF(동남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십 우승을 태국에 안긴 인물이다.
김 감독은 "그 정도로 좋은 결과를 만들어준 감독이 두 경기 만에, 심지어 2위인데 경질된다는 것을 보며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곰곰 생각해보면 저 역시 키르키스스탄전에서 1-3으로 지고 있을 때 팬들 사이에서 난리 났다고 들었다. 아마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면 이 자리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웃음). 그게 감독의 숙명"이라고 씁쓸하게 짚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자신의 버릇 하나를 공개했다. 김 감독은 "매치 데이 아침은 정말 거하게 먹는다. 좋은 호텔에서 지내며 푹 쉬면서 밥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 먹고 즐긴다. 왜냐하면 경기가 끝난 밤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2022년 초 말레이시아에 처음 왔을 때부터 각오했다. 지금 2년 계약을 했지만, 이 계약 기간을 다 못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와 같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두고 "이것이 감독의 삶"이라고 했다. 아무리 객관적 전력상이라는 지표가 있다고는 해도, 경기에서 지고 속편한 팬들은 없다. 말레이시아와 같은 동남아의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아 무대에서 정상급 경쟁을 벌이기엔 아직 모자람이 많다는 점을 모두가 알지만 그것과 감독을 향한 비판 여론은 또 별개다.
어찌 됐든 감독은 주어진 한정된 자원 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심지어 외국인 감독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더욱 가혹하다는 걸 김 감독은 잘 알기에 더욱 이를 헤쳐나가려 한다.
그래서 반갑고 대단한 2년 재계약 소식
푈킹 감독의 경질 소식과 마치 대비를 이루듯, 얼마 전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축구협회(FAM)가 김 감독과 재계약했다는 소식이 나와 화제가 됐다. 공식 발표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하미딘 모흐드 아민 말레이시아축구협회 회장이 키르키스스탄전 승리 직후 직접 말레이시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공표했다.
김 감독은 "사실 재계약은 오래 전에 했다. 지난 3월에 사인을 했었다. 늦게 발표된 건 회장님의 정치적인 수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 때나 재계약 발표를 하지 않고 가장 좋은 순간에 말씀하셔서 팀과 감독에게 힘을 주신다"라고 웃었다. 이어 "재계약해서 정말 기쁘다. 지난 2년간 좋은 평가를 받은 점이 정말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재계약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김 감독은 "정말 좋은 스태프를 모시고 오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실제로 우리는 굉장히 좋은 스태프를 구축해놓고 있다. 저의 지도력도 인정하셨겠지만, 실제로는 우리 코칭스태프 모두를 인정하신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 "제가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대표팀을 지휘했던 전임 감독님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전임 감독님께서 좋은 토대를 제게 물려주셨다. 저는 주어진 토대에서 몇 가지 부분만 수정했을 뿐 이곳에서 특별히 가르치거나 한 건 없다"라고 과거 말레이시아 사령탑들에게도 고개 숙여 감사함을 전했다.
김 감독은 "제가 이곳에 와서 선수들에게 뭔가 특별한 걸 가르치거나 그런 건 아니다. 대신 함께 하는 파트너이자 동료로서, 선수들에게 뭔가 안겨줄 수 있는 훈련을 통해 최고의 서비스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저를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들이 굉장히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보람이 된다. 선수들에게 상당한 신뢰를 받은 것, 나아가 현지 팬들에게서도 강력한 지지를 받는 것도 뿌듯하다. 솔직히 무척 노력하고 애써도 안 되는 케이스도 있지 않나? 그런 면에서 행복하다"라고 자신이 이룬 성과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제 김 감독은 말레이시아와 더 큰 꿈을 꾼다. 김 감독은 "지금까지는 애쓴 것 이상으로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운을 뗀 후, "이제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도 가보고 싶고 다가오는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도 16강 토너먼트에도 진출하고 싶다. 만약 그게 현실이 된다면, 우리 말레이시아 축구는 좀 더 탄탄한 토대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말레이시아는 앞으로 아시아 무대에서 더 강력한 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목표 의식을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감독은 다가오는 카타르 아시안컵 본선에서 마주하게 될 '고국'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멀리 말레이시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응원하는 팬들의 여전한 지지와 응원에 그는 정말이지 고마워했다.
"다가오는 아시안컵을 앞두고 우리 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말레이시아와 함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말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정말 대등한 입장에서 승부를 치르며 좋은 결과를 내어 말레이시아 국민들과 한국 축구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많이 응원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