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이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수원FC를 2-0으로 제압한 이날 오전 잠에서 깬 이정협은 장인이 별세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인상을 당한 이정협은 이날 경기 전반 19분 선제골을 터뜨리며 승리의 선봉에 섰다.
강원으로서는 꼭 필요한 승리였다.
K리그1에선 정규리그 최하위가 다음 시즌 바로 2부리그로 강등되며, 10위와 11위는 승강 플레이오프(PO)를 통해 강등될 팀을 가른다.
이날 패했다면 최종전을 남겨두고 10위 강원(승점 33)이 수원FC와 수원 삼성(이상 승점 32)에 밀려 최하위로 떨어질 수 있었다.
생전 강원의 열성 팬이었던 장인은 평소 이정협에게도 큰 힘을 줬고, 이정협은 장인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사이가 각별했다고 한다.
1년가량 췌장암으로 투병한 장인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이정협이 들은 것은 지난 24일 밤이었다.
경기 당일 오전 비보를 접한 이정협은 장인의 유지를 생각해 일단 뛰기로 했다. 아내 역시 출전하길 원하자 이정협은 모든 슬픔을 잊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데 집중했고, 결국 결과물을 냈다.
수원FC전 결승 골이 된 득점은 이정협의 올 시즌 2호 골이다.
그러나 경기를 위해 마음 한 귀퉁이에 몰아넣은 감정을 끝내 외면하지 못했다.
김대원의 침투 패스를 따라 뛴 이정협은 수비 견제를 이겨내고 페널티아크 앞에서 넘어지면서 오른발로 차 넣어 골망을 흔들었다.
득점 후 이정협은 얼굴을 감싼 채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더니 오열하기 시작했다.
몰려오는 슬픔에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한 이정협은 연신 눈물을 훔치더니 양손을 하늘로 치켜들며 '눈물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최전방에서 왕성한 활동량이 강점인 이정협은 울리 슈틸리케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애제자였다.
준우승으로 끝난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맹활약해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라는 수식어를 받은 이정협은 후임 대표팀 감독들에게는 중용되지 못했다.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시절에는 조규성(미트윌란) 등에 밀리면서 2021년 이후 국가대표팀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21시즌 도중 경남FC에서 트레이드를 통해 강원에 합류한 이정협은 최전방에 배치된 공격수인데도 득점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2021시즌 정규리그 18경기에서 단 1골을 넣은 이정협은 2022시즌에도 31경기에 나서서 5골을 넣는 데 그쳤다. 올 시즌도 현재까지는 2골이다.
그런데도 강원이 지난 시즌 양현준(현 셀틱), 김대원으로 꾸려진 양 날개를 앞세워 6위라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받은 데는 최전방에서 부지런히 뛰어 수비수를 끌어내며 두 선수가 활약할 공간을 만든 이정협의 공도 적지 않다는 평가도 많았다.
지난 6월 25일 수원FC와 원정 경기(1-1 무승부)에서 올 시즌 첫 골을 기록한 이정협은 5개월 만에 재회한 수원FC를 상대로 또 득점포를 가동했다.
시즌 막판까지 강등 걱정에 시달리는 강원으로서는 득점이 절실한 순간 들려온 이정협의 골 소식이 반갑다.
그러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이정협은 경기 직후 강릉 모처에 마련된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아내가 만삭인 만큼, 이정협이 상주로서 구단 관계자들을 포함한 조문객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강원 관계자는 "하필 경기 당일 이런 일이 있었는데, 평소처럼 출전해서 득점 후 세리머니까지 해서 구단 직원들도 모두 놀랐다"며 "이정협 선수가 경기 도중 목이 아파서 뛰기 힘들었다고 호소할 정도로 많이 울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