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 안형준 기자]
그레이가 드디어 제대로 인정을 받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11월 28일(한국시간) 소니 그레이와 FA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3년 7,500만 달러가 보장되고 최대 4년 1억 달러까지 규모가 상승할 수 있는 대형 계약이다. 그레이는 연평균 2,500만 달러를 받는 '고액 연봉자'가 됐다.
그레이는 올겨울 FA 시장 최대어 중 한 명이었다. 퀄리파잉오퍼를 받은 7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고 오타니 쇼헤이, 블레이크 스넬, 애런 놀라(PHI), 야마모토 요시노부 등과 함께 투수 최대어로 손꼽혔다. 그리고 최대어 평가에 걸맞는 계약을 따냈다.
사실 '이름값'을 감안하면 늦은 성공이었다. 1989년생 그레이는 특급 기대주였다. 야구 명문 밴더빌트 대학교 출신 그레이는 2011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8순위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지명됐고 2012년에는 TOP 100 유망주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013년 빅리그에 데뷔해 커리어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데뷔시즌 12경기 64이닝을 투구하며 평균자책점 2.67을 기록한 그레이는 2014년 곧바로 풀타임 선발투수가 됐다. 첫 풀타임 시즌에 33경기 219이닝, 14승 10패, 평균자책점 3.08의 빼어난 성적을 쓴 그레이는 2015년 31경기 208이닝, 14승 7패, 평균자책점 2.73을 기록하며 '특급 에이스'로 떠올랐다. 올스타에 선정됐고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 그렇게 성공가도를 달리는 투수가 되는 듯했다.
하지만 2016년 승모근, 팔뚝 부상을 경험하며 22경기 평균자책점 5.69로 주춤하며 상승세가 꺾였다. 그리고 2017시즌 도중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며 커리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양키스로 이적한 그레이는 2017-2018시즌 2년 동안 41경기 195.2이닝, 15승 16패, 평균자책점 4.51로 부진했고 특히 2018시즌에는 130.1이닝을 투구하며 평균자책점 4.90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FA 자격 취득이 가까워지던 시기에 겪은 큰 부진은 치명적이었다. 실망한 양키스는 2019시즌에 앞서 그레이를 신시내티 레즈로 헐값에 트레이드했고 그레이를 품은 신시내티는 발빠르게 움직여 5년 5,070만 달러의 장기 계약을 맺었다. 양키스에서의 부진이 없었다면 FA 시장에서 훨씬 큰 규모의 계약을 맺을 수도 있었던 그레이였다.
데뷔 첫 5시즌 동안 125경기 770.1이닝, 48승 43패, 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한 그레이는 양키스를 떠난 뒤 신시내티와 맺은 계약기간 5년 동안(2022시즌 전 미네소타로 트레이드) 124경기 670.1이닝, 39승 33패, 평균자책점 3.22를 기록했다.
그레이는 2018년 한 시즌을 제외하면 10시즌 동안 빅리그에서 1,441이닝을 투구하며 87승, 평균자책점 3.34를 기록한 투수였다. 2018시즌을 포함해도 그레이가 빅리그 11시즌 동안 기록한 통산 성적은 279이닝 1,571이닝, 98승 85패, 평균자책점 3.47, fWAR 30.4. 리그 최상위권의 성적이었다.
그레이는 해당기간 메이저리그에서 14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해당기간 1,000이닝 이상을 투구한 74명의 투수 중 14번째로 낮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해당기간 14번째로 높은 fWAR를 쌓은 투수였다. 같은기간 다르빗슈 유,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마커스 스트로먼, 패트릭 코빈 등보다 더 높은 승리기여도를 쌓았다. 하지만 단 한 시즌의 부진으로 다른 선수들이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동안 연평균 1,000만 달러 수준의 계약에 묶였고 34세가 돼서야 처음으로 FA 시장에 나와 고액 연봉을 받게 됐다.
원래 강력한 싱커를 앞세우는 투수였던 그레이는 올시즌 스위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변화를 줬고 적중했다. 싱커의 위력이 다소 감소했지만 예리한 스위퍼로 돌파구를 찾았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시속 92-93마일로 빠르지 않고 압도적인 탈삼진 능력을 자랑하는 투수도 아니지만 그레이는 평균 이상을 유지하는 준수한 제구력과 뛰어난 땅볼 유도 능력, 리그 최상급의 홈런 억제력을 가진 투수다. 신시내티에서 활약하며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서 이미 성공해 본 좋은 기억도 있다.
최고의 기대주였고 충분한 성과도 냈지만 때를 잘못 만난 불운의 선수였던 그레이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됐다. 과연 그레이가 반등을 노리는 '명문구단' 세인트루이스의 에이스로 팀과 함께 기분좋게 날아오를지 주목된다.(자료사진=소니 그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