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남자부 우리카드의 신영철 감독은 2023~2024시즌을 앞두고 ‘새판’을 짜야 했다. ‘주포’였던 나경복이 KB손해보험과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하며 팀을 떠나는 등 선수단 변화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나경복 이탈의 연쇄작용 중 하나로 ‘주전 세터’ 황승빈까지 적을 옮기게 됐다. 날개 공격수 보강이 필요했던 우리카드는 KB손해보험에 황승빈을 내주는 대신 아웃사이드 히터 한성정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가장 고민이 컸던 포지션은 세터였다. 나경복의 빈자리는 지난 시즌 ‘에이스’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 김지한이 메워줄 것이란 기대가 있던 반면, 세터 자리에는 확실한 대체자가 도드라지지 않았다. 신 감독의 선택은 2004년생 한태준(19)을 주전 세터로 기용하는 것이었다. 수성고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도전장을 내민 한태준은 2022~2023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우리카드의 지명을 받은 전도유망한 세터다. ‘명세터’ 출신 신 감독이 지난해 드래프트 당시 “즉시 전력감 선수”라고 표현할 만큼 세터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춘 것으로 평가됐다.
다만, 경험이 부족하다는 약점은 올 시즌 내내 그가 안고 가야 할 숙제였다. 팀 공격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세터 포지션 특성상 누적 경험에서 나오는 연륜을 결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 첫해였던 지난 시즌 18경기(45세트) 출장에 그쳤던 한태준은 얕은 경험을 빠른 흡수력으로 채워가며 우리카드의 ‘돌풍’을 이끌고 있다. 29일 현재 우리카드는 승점 22(8승3패)로, 선두 대한항공(승점 25·8승3패)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우리카드의 선전에는 안정적인 토스를 바탕으로 세트 부문 1위(세트당 12.35개)를 기록 중인 한태준의 지분도 적지 않다. 한태준은 시즌 초반, 쟁쟁한 선배 세터를 앞서는 기록을 보이고 있다.
물론, 신 감독의 눈에는 여전히 한태준의 모자란 점이 먼저 보인다. 여기에는 젊은 새싹이 크게 성장하길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담겨 있다. 신 감독은 최근 세터 한선수를 중심으로 ‘왕조’를 구축한 대한항공 사례를 언급하며 우리카드가 아직 ‘원팀’으로서 경쟁력은 떨어진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스트레스받지 않는 범위에서 (한)태준이를 가르쳐 그의 경기 운영 능력을 끌어올리려고 한다”며 “시간이 걸리는 것 같기도 하고,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 감독의 기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발언이다.
우리카드는 30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대한항공과 원정 경기를 치른다. ‘10대 세터’ 한태준이 ‘베테랑’ 한선수 앞에서 어떤 배짱 있는 모습을 보여줄지도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