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어떻게 보면 어린 나이에 시련이 많았던 선수다. 아픔도 많은 선수였다. 스스로 "방황했던 시기도 있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대학에 가서도 경쟁에서 밀렸다. 보기 드물게 휴학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지명 당시까지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2023년 SSG 퓨처스팀(2군)의 최고 성장주 중 하나로 뽑히는 포수 김건이(22)는 한때 야구를 그만 둘 위기까지 몰렸던 선수다.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했지만 고교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지명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더 큰 시련이었다. 자신을 전폭적으로 뒷바라지한 부모님께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건이는 고교 졸업 후 당시에 대해 "지명을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야구를 못했다. 그런데 추계리그부터 2학년들이 자리를 물려받았고, 고등학교 3학년으로 넘어가는 1~2월에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고점을 찍었다"면서 "엄청 기대가 큰 상황에서 3학년에 들어갔는데 내가 많이 못했다. 혹시 초반에 보여줬던 것이라도 누가 봐서 (지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그게 안 됐다"고 되돌아봤다.
2학년 때까지 특별한 성적을 남기지 못했고, 정작 졸업반인 3학년 성적도 좋지 않았다. 1~2달 잘한 것으로 평가를 하는 구단은 없었다. 다른 제안도 없었다. 대학 진학은 유일한 선택지였다. 강릉영동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상심이 컸던 탓일까. 야구가 잘 잡히지 않았다. 김건이에게는 방황의 시간이었다. 연이은 시련에 야구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었다.
김건이는 "대학 감독님이 1학년 때 기회를 엄청 많이 주셨다. 형들보다도 기회를 더 주셨다. 그런데 내가 그 기회를 못 잡았다. 방황도 많이 했던 시기"라면서 "1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렸는데 이미 1년 방황했던 것이 너무 컸다. 이미 다른 포수가 있는 상황에서 출전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주전 포수를 밀어내기에는 내 실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때 감독님이 '아까우니 일단 휴학을 하면서 만들어봐라'고 하셨다"고 휴학 배경을 설명했다.
다행히 정신을 차렸다. 마지막 기회에 이를 악물었다. 김건이는 "집에도 안 갔다. 휴학 기간 중에도 운동만 했다"고 했다. 1년의 휴학을 마친 김건이는 달라져 있었다. 다시 마스크를 쓰고 경기장을 열정적으로 누볐다. 이 장면이 SSG 스카우트의 눈에 걸렸다. 그렇게 2023년 10라운드, 전체 95순위에서 극적으로 SSG의 지명을 받았다. 다시 포기하려는 찰나, 지명 마무리를 앞두고 프로행이 확정됐다.
고생을 많이 해서 그랬을까, 미안해서 그랬을까. 김건이는 "지명을 받았을 때 진짜 많이 울었다"고 했다. 김건이의 아버지는 아예 드래프트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지명을 받고 난 뒤 회사 동료들에게 먼저 축하를 받았던 터였다. 지명을 받은 김건이가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을 때, 아버지는 "고생 많이 했다"는 딱 한 마디를 했다.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김건이는 자신의 다짐을 실천으로 옮겼다. 매사 열정적으로 뛰었다. SSG 코칭스태프도 인정했다. 올해 포수와 외야를 오가며 퓨처스리그 72경기에 나갔다. 타율 0.277, 3홈런, 28타점, 출루율 0.395라는 좋은 성적도 남겼다. 김건이의 외야 출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김건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오히려 고마워했다. 그는 "포수 수비는 보완해야 할 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경기에 나가기 어려웠다. 기회를 많이 받으려면 외야로도 뛰는 게 좋겠다고 하셨는데 나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퓨처스리그 72경기면 적은 출전 수가 아니다. 김건이도 "원 없이 뛰어봤다"고 웃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많이 느낀 게 올해의 수확이다. 김건이는 "타석에 많이 들어서니 자신감도 붙었다. 중간에 기록이 오락가락하기는 했지만 좋아졌다고 많이 느꼈다. 앞으로도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고 미소 지었다.
타격은 이미 인정을 받고 있다. 오준혁 퓨처스팀 타격코치는 "장타보다는 콘택트 유형의 타자인데 타이밍으로 치는 타자다. 공을 그냥 때려서 치는 타자가 아니라, 공의 안쪽 부분을 친다. 스프레이 히터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타자라고 생각한다"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면서 "장점을 살리면 충분히 빠른 공도 대처할 수 있고, 변화구도 대처할 수 있는 스윙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올해 퓨처스팀 관계자들의 일관된 호평과도 일치한다.
"장점도 많이 알았는데 수비에서는 부족한 것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외야 수비가 아니다. 포수 수비다. 김건이는 "포수로 성공하고 싶다. 내가 해왔던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포수의 매력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가고시마 유망주 캠프에서 수비 훈련에 열을 올렸다. 김건이는 "타격만 좋아서는 안 되는 포지션이다. 수비 쪽에서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커졌다"면서 "송구 정확도가 오락가락하는 데 이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명 후 흘렀던 눈물은 이제 다 말랐다. 10라운드 지명 선수지만, 2군이라고 해도 입단 동기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경기에 나갔다. 출발이 뒤에 있었을지 모르지만 상당 부분 다 따라잡았다. 그래서 요즘 야구가 즐겁다. 목표도 섰다. 김건이는 "내년 캠프에 꼭 따라가고 싶다. 그것이 첫 번째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 한다. 타격도 보여드리고 싶고, 수비의 단점도 보완해서 '수비도 되는 선수'라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성적은 지명순이 아니다. 우여곡절과 시련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사전에서 지운 김건이가 이제 정정당당하게 출발선에 다시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