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조형래 기자] 사실상 단독 입찰한, 경쟁이 없는 선수에게 두산은 거액을 안겼다. 어쩌면 두산 동료 양의지(36)의 말에 힌트가 있을지 모른다.
두산이 집토끼 단속에 성공했다. 두산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양석환(32)과 4+2년 최대 78억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첫 4년 계약 총액은 최대 65억 원(계약금 20억 원, 연봉 총액 39억 원, 인센티브 6억 원)이다. 4년 계약이 끝난 뒤에는 구단과 선수 간의 합의로 발동되는 2년 13억 원의 뮤추얼 옵션이 포함됐다.
신일고~동국대를 졸업한 양석환은 2014년 LG트윈스에 2차 3라운드로 입단했다. 2021시즌을 앞두고 좌완 투수 함덕주가 LG로 이적하는 2대2 트레이드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에서 3년간 380경기에서 타율 2할6푼7리, 69홈런 23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788로 활약했다. 프로 통산 성적은 897경기 타율 2할8푼1리, 122홈런, 499타점이다.
3년 연속 20홈런(28개-20개-21개)을 때려낸 얼마 안되는 거포라는 강점은 분명하다. 올해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8명의 선수들 가운데, 연속 시즌 20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SSG 최정(8년 연속)을 제외하면 없다. 그만큼 꾸준히 홈런포를 생산해냈다. 특히 리그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면서도 이 기록을 만들어냈다. 최근 3시즌 동안 잠실구장에서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낸 선수도 양석환(28개)이다. 2위가 팀 동료 김재환(23개). ‘잠실 홈런왕’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거포다.
두산 베어스
적정가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었다. 두산은 오버페이 경계했다. 그동안 내부 FA 유출도 적지 않았지만 집토끼 단속을 위해서 출혈도 감수했다. 양의지(4+2년 152억 원), 김재환(4년 115억 원), 정수빈(4+2년 56억 원), 허경민(4+3년 85억 원) 등 거액 계약을 다수 체결했다. 샐러리캡 부담도 이제는 적지 않아졌다. 양석환과 함께 FA 자격을 얻은 홍건희까지 모두 잡는다는 기조를 세웠지만 “우리가 정해놓은 기준선이라는 게 있다”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시장가 이상의 금액을 투자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뉘앙스였다.
두산으로서는 경쟁도 각오해야 했다. 1루수가 필요한 KIA도 양석환에 관심을 보였고 시장가를 염탐했다. 그런데 양석환은 올해 A등급 FA였다. 만약 KIA가 양석환을 영입한다면 20인 보호선수 외 보상선수도 내줘야 했다. 이미 안치홍이 한화와 4+2년 72억 원에 계약한 상황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양석환의 몸값은 70억 후반대로 책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부담을 느낀 KIA는 내부 육성 기조로 선회하며 양석환 영입전에서 철수했다.
사실상 두산의 단독 입찰이었다. 두산 입장에서는 오버페이를 하지 않는다는 기조 아래, 양석환과 협상에서 좀 더 우월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두산은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정해놓은 선”이라는 게 있다고 말했지만 구단 선수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산은 과거 ‘화수분 야구’로 명성을 떨쳤다. 김재호 양의지 허경민 정수빈 김재환 등 현재 자원, 그리고 민병헌(은퇴), 최주환(키움), 오재일(삼성), 박건우(NC), 김현수(LG) 등 현재 팀을 떠난 자원들까지. 과거 두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들이었고 모두 두산에서 성장했다. 이들의 성장과 안착, 그리고 김태형 감독의 용병술이 더해지며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완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둘 씩 떠났고 나이가 들었다. 이들을 대체해야 하는 자원들이 등장해야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연이은 한국시리즈 진출로 드래프트 순서는 하위권을 맴돌았다. 유망주 선발이 어려운 여건이었다. 연이은 한국시리즈 진출로 감격에 젖어있을 때 일부 두산 관계자들은 “2군에 이제 선수들이 없다. 몇년 후가 걱정이다”라고 말하며 후폭풍을 우려하기도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다시금 유망주를 수급하고 있지만 과거의 ‘화수분 시대’를 재현하는 게 당장 쉽지 않다. 여전히 주전 유격수는 김재호이고 올해 김재환이 부진을 거듭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써야 했다. 그리고 포수 양의지가 빠지면 대책이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두산의 선수층은 얇았다.
양석환의 공백도 마찬가지다. 만약 두산이 계속 고자세를 유지하다가 가치와 평가가 떨어진다면, KIA처럼 1루수가 필요한 구단이 다시 영입 경쟁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양석환을 놓치게 된다면 당장 양석환을 대체할 선수가 눈에 띄지 않았다. 거포는 커녕 1루수 주전부터가 걱정이다. 감독 2년차인 2024년, 공격적인 야구를 펼치겠다고 다짐한 이승엽 감독 입장에서 양석환은 절대적인 전력이었다.
양의지는 최근 KBO 시상식 자리에서 양석환의 잔류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선수는 많으면 좋은 것이다. 또 유출이 되는 것은 좀…”이라고 말을 흐리면서 “구단 입장에서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더뎌 보인다. 좋은 선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라는 말로 현재 두산 상황을 꿰뚫어봤다.
어쩌면 두산은 처음부터 양석환과 협상에서 78억 원이라는 거액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을지 모른다.
양석환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뒤 구단을 통해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에 합류하면서 야구 인생이 다시 시작됐다. FA 자격을 행사했을 때부터 팀에 남고 싶었다.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주신 박정원 구단주님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FA 계약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책임감을 갖고 중심타자로서, 좋은 선배로서 두산베어스만의 문화를 이어가는 데 앞장서겠다”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