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에 잉글랜드 5부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기적의 팀' 루턴 타운. 한국 축구 실정상 당분간 나오기 힘든 스토리다. 로이터연합뉴스◇지난 18일 거제-진주 K4 승강 플레이오프 경기 후 장면. 본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K4 선수출신 C씨는 창원시청의 역습 상황에서 진주시민 미드필더가 지나치게 늦게 수비에 가담했다고 의심했다. 사진출처=중계화면 캡쳐[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승격이요?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K3(3부)와 K4(4부) 무대를 두루 경험한 한 축구인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K4에 속한 일부팀이 K3 승격을 기피한다고 귀띔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잉글랜드와 같은 유럽 빅리그처럼 K1부터 K7(1부~7부)까지 승강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A씨는 창원시청(K3)과 진주시민축구단(K4)의 승강플레이오프 결정전에서 창원시청이 승리해 3부에 남을 것이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이 맞는지, 한번 결과를 지켜보라"고 했다.
25일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양팀의 경기는 A씨의 말대로 창원시청의 2대0 승리로 끝나며 창원시청이 가까스로 3부에 살아남았다. 리그 수준의 차이를 감안할 때, K3팀이 K4팀을 꺾는 건 일반적이다. 하지만 K4 사정을 잘 아는 축구계 관계자 B씨는 "창원시청은 올시즌 성적이 좋지 않았다. 선수 레벨도 진주시민이 더 좋다는 평가도 있었다"며 진주가 충분히 해볼만한 경기였다고 말했다. B씨는 진주가 베스트 전력을 총투입하지 않고 일부 로테이션을 가동했다며 그 배경을 의심하기도 했다.
K4 선수 출신 C씨는 진주 미드필더들이 역습 상황에서 느리게 수비에 가담하는 장면, 진주 골키퍼가 몸을 제대로 날리지 않고 성봉재에게 허망하게 두 골을 실점하는 장면, 두번째 실점 장면에서 진주 수비수 중 누구 하나 골문 쪽으로 달려오지 않은 장면을 의심했다. "일대일 상황에서 돌파하는 상대에게 발을 뻗어 막지 않는 수비수가 세상에 어디 있나. 선수 출신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장면들이 많았다"고 '고의 패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 측은 "협회 담당자가 현장에서 경기를 봤다. 문제성 있는 경기는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K4 선수출신 C씨는 창원시청 성봉재 추가골 직전 상황에서 수비수들이 골대쪽으로 달려오지 않고 천천히 이동한 점을 의아해했다. 사진출처=중계화면 캡쳐출처=창원시청 SNSA, B, C씨를 비롯해 K3, K4에 종사하는 복수의 관계자들은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발언을 종합할 때, K4에 속한 팀 중 절대 다수는 예산 등 현실적인 문제로 K3 승격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K4 팀들의 1년 예산은 적게는 5억원, 많게는 12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K3는 양주시민축구단 등 일부 팀을 제외하곤 30억대를 쓴다. K3와 K4의 예산 차이는 이처럼 크다. K4는 규정상 최대 10명의 사회복무요원(공익)을 보유할 수 있다. 프로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사회복무요원은 K4에선 매월 40~50만원의 훈련비와 정해진 승리 수당 정도만 받도록 되어 있다. 즉 사회복무요원에게 들이는 한 달 인건비가 대략 500만원, 1년에 6000만원이다. 이름값 높은 선수들에게 월급 명목으로 각종 수당을 포함해 200~300만원씩 지급한다는 소문은 돈다.
반면 K3는 사회복무요원을 보유할 수 없다. 모든 선수가 연봉제 계약을 맺는다. 최저 연봉 2000만원짜리 선수를 20명만 보유해도 1년 선수 인건비만 4억원이다. K3에는 연봉 7000~8000만원, 많게는 1억원대가 넘는 선수들도 있다. 예산 5억~7억을 쓰는 K4 팀들이 감당하기엔 벅차다. 게다가 K4 팀들이 K3으로 승격할 경우, 사회복무요원을 보유할 수 없어 새 판을 짜야 한다. 승격한 K4 팀 소속의 사회복무요원은 다른 K4 팀으로 '이적'해야 한다. 올 시즌 승격한 여주시민축구단 소속의 사회복무요원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K3리그로 승격한 여주시민축구단.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예산이 부족한 K4 팀 입장에선 K3으로 올라간다한들 K3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한 시즌만에 바로 강등된 팀 중에는 예산이 삭감된 팀, 코치진이 바뀐 사례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승격을 하는 것이 승격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K4에선 전반기에 잘했던 팀이 후반기에 주전급을 제외해 성적이 뚝 떨어지는 현상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10월 전국체전에서 우승한 당진시민축구단이 대표적이다. A씨는 "3년 전 한 K4 구단이 계속 비주류 선수를 경기에 내보내 승격을 거부했다는 파장이 일었다. 징계를 하느니마느니 하다 결국은 유야무야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대한축구협회는 1부부터 7부까지 구성된 '디비전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아직 K리그2와 K3, K4와 K5간 승강은 운영하지 않고 있는데, 2026년부터 두 개의 벽도 허물 계획이다.<스포츠조선 10월12일 단독보도> 하지만 그 전에 K3과 K4 사이를 가로 막은 '보이지 않는 벽'이 높다. 이대로면 K리그2와 K3, K4와 K5 사이에서도 똑같은 승격 기피 현상이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 프로 무대 소속의 사회복무요원이 K4에만 진출하는 현 규정에 문제가 없는지, 축구단이 언제까지 시(도) 예산에 좌지우지돼야 하는지, 축구단을 창단할 때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수는 없는지, 협회의 디비전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없는지, 3부든 4부든 각 리그가 자생력을 갖췄는지 등은 축구계 전체가 고민할 일이다. 이대로면 정상적인 승강제, '한국판 루턴 타운', 'K리그판 제이미 바디'는 꿈도 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