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잘 나가던 선수가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10여 년 전만 해도 ‘포스트 최경주’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며 한국 남자 골프 간판으로 명성을 떨쳤던 이동환(36)도 이른바 ‘잊힌 이름’이 된 선수 중 한 명이다.
이동환은 주니어 시절인 2003년 한국아마추어골프선수권과 2004년 일본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를 우승하면서 일찌감치 한국 남자 골프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꼽혔다. 특히 일본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 우승은 한국인으로는 최초였다. 그런 활약에 힘입어 그는 2004~2005년까지 2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이동환은 2006년 일본프로골프(JGTO)투어를 통해 프로에 데뷔했다. 일본아마골프선수권 우승자에게 주는 Q스쿨 1차 면제 특전이 일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2006년 JGTO투어 신인상 수상으로 연착륙에 성공한 이후 2승을 거두고 이동환은 미국 진출에 도전한다. 그리고 2012년 아시아 선수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큐스쿨에서 수석합격 하면서 그 꿈을 이루게 된다. 모든 게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거침없이 착착 진행됐다.
PGA투어에서 활동했던 2016년까지만 해도 이동환에게 거는 팬들의 기대는 컸다. 시드를 잃고 2017년부터 2부인 웹닷컴투어(현 콘페리투어)로 내려갔을 때도 팬들은 그의 재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동환은 끝내 PGA투어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를 끝으로 콘페리투어 ‘저니맨’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 복귀를 결정했다. 이동환은 지난 11월 19일 끝난 KPGA 코리안투어 QT(퀄리파잉 토너먼트)에서 25위에 이름을 올려 내년 투어 카드를 손에 넣었다.
힘들었을 지난 시간과 향후 계획, 그리고 2024시즌 목표 등을 듣기 위해 이동환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먼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 지가 궁금했다. 그는 “국내로 돌아온 뒤 골프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며 “친구의 제안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아카데미에서 코치 생활을 했는데 많은 걸 느끼면서 초심으로 돌아간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화려했던 커리어와 달리 이동환은 프로 무대에서만큼은 팬들 사이에서 ‘불운의 아이콘’으로 인식됐다. 적어도 PGA투어 진출 이후에는 그렇게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내세울 만한 성적은 없었지만 나름 투어 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그런 평가에 손사래를 쳤다. 콘페리투어 생활을 스스로 끝내기로 한 건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서둘러 귀국했다.
이동환은 “2022년부터 한동안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휴식을 가졌다.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투어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결코 부진 때문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서포터스가 됐다. 그 중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 챔프인 대선배 양용은(51)의 조언 한 마디 한 마디는 그에게 엄청난 힘이 됐다. 이동환은 “양용은 프로님께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도움이 됐다. 큰 용기를 얻었다”며 “골프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생각보다 확신이 빨리 왔다”고 선배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의 노력은 내년 KPGA 코리안투어 시드 획득이라는 선물로 이어졌다. 이동환은 정식 투어 멤버로서 KPGA 코리안투어에서 활동한 적이 없다. 내년이 루키 시즌이다. 이동환은 “루키 시즌을 선후배 선수들과 즐겁게 보내고 싶다. 현재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을 계속 가르치면서 투어 생활을 병행할 것”이라며 “나도, 학생들도 윈윈하는 한 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물론 루키로서 목표가 하나 있긴 하다. 평생 한 번 밖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신인상 수상이다. 그는 “올해 박성준 선수가 신인상(명출상)을 차지했는데 2024년 신인상은 내 차지였으면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동환은 오는 12월 말에 미국 테메큘라로 동계 전지 훈련을 떠날 예정이다.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미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 기간에 본인도 그동안의 실패 원인으로 지적됐던 체력 훈련에 역점을 둘 계획이다.
이동환에게는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멘토’가 한 명 있다. ‘탱크’ 최경주(53·SK텔레콤)다. 이동환은 “최 프로님은 나 뿐만 아니라 항상 후배들을 돌봐 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내가 골프를 쉬어가겠다고 고민할 때도 ‘새로운 시도도 좋다’고 격려 해주셨다”고 했다. 그는 이어 “부족한 나를 보듬어 주시고 이끌어 주신 최경주 프로님께는 언제나 항상 감사한 마음 뿐이다. 그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