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이 품기까지 8년이 걸린 재능
라이언 흐라번베르흐의 리버풀 입문기
[타임즈 - 폴 조이스]
이적시장 마감일 며칠 뒤인 어느 날, 리버풀 코칭 스태프진은 올 여름 구단의 마지막 영입생인 흐라번베르흐를 한쪽으로 불러내고는 한 가지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오늘은 선수 라이언 흐라번베르흐를 소개하는 시간이야." 코칭 스태프로부터 계획을 전달받은 이적료 34m파운드의 사나이 흐라번베르흐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리버풀 인 (人)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이날, 흐라번베르흐는 공이 없는 상황에서의 움직임에 초점을 둔 훈련을 진행했는데, 만약 선수가 실전에서 소유권을 상대에게 헌납했을 때, 본인이 저지른 실수를 곱씹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여 잃은 소유권을 즉각 되찾아오게끔 하는 훈련이었다.
페페인 레인더스 수석 코치가 주도하고 클롭 감독이 깊게 관여한 이 단기 특강은 리버풀이 추구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흐라번베르흐가 곧바로 녹아들 수 있도록 설계된 것으로, 리버풀에서는 일반적으로 새로 영입된 선수들이 구단에 적응할 때 거치는 과정이다.
실제 디아스와 각포 역시도 입단 당시 동일한 훈련 세션을 소화했었고, 코치들이 신입생들에게 말해주고자 하는 정보의 8할은 이 훈련을 통해 전달된다. 나머지 내용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채워지며, 이 중 일부는 팀원들과 호흡하는 과정에서 선수에게 전해지기도 한다.
흐라번베르흐는 새로운 환경에 최대한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이번 A매치 주간 네덜란드 U-21 대표팀을 자진해 하차했을 정도로 본인에게 찾아온 기회를 움켜쥐고자 하는 선수다. 그리고 '훈련, 집 보러 다니기, 호텔, 저녁 식사'의 반복이었던 선수의 입단 첫 주가 끝나는 시점에서, '우린 포텐이 높은 선수를 영입해냈다'는 리버풀의 생각은 여전히 확고하다.
"종합적인 능력이 정말 흥미로워요." 클롭 감독이 한 말이다. "지금 정말 열심히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좋은 녀석이고 동시에,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에요.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일단 우리 팀의 플레이에 적응을 해야하고, 선수가 본인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모습에 다가가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린 노력할 겁니다."
사실 이렇게 흐라번베르흐를 품기까지 리버풀이 얼마나 인내심을 발휘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있다. 물론 리버풀이 흐라번베르흐의 잠재력을 초장부터 알아본 유일한 구단은 아니지만, 리버풀 소속 스카우트인 매트 뉴베리가 처음 관전한 흐라번베르흐의 경기는 선수가 13살이었을 때, 본인보다 3살이 많았던 아약스 U-16팀 형들과 함께 치른 PSV 에인트호번 전이었다.
당시 경기에서 흐라번베르흐는 퇴장을 당하긴 했었으나, 퇴장 전까지 선수가 보여준 개성 넘치는 플레이, 볼을 다루는 능력, 압박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패스를 받고자 하는 모습들은 뉴베리를 포함, 경기를 지켜보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흐라번베르흐에게 호기심이 생긴 리버풀에서는, 그 후로도 수석 스카우트인 배리 헌터와 영입 팀장인 데이비드 팔로우즈가 선수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갔었는데, 이 관심은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한 유럽권 유소년 토너먼트 대회에서 선수의 경기를 직관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흐라번베르흐가 텐하흐 감독 밑에서 16세 130일의 나이로 아약스 데뷔전을 가지며 구단 역대 최연소 출전 기록을 갈아치우기 바로 전의 일이었다.
그 대회에는 뉴베리와 U-21팀 코치였던 배리 루터스 또한 동행했었지만, 무엇보다도 프리미어리그 이적시장이 막 열렸었던 당시 헌터와 팔로우즈가 그 4인조에 들어가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흐라번베르흐를 '미래에 구단이 영입하길 바라는 재능'이라 판단했음을 증명하는 사실이다.
작년 여름, 흐라번베르흐가 바이언 입단을 선택하며 아약스 시절 동료였던 마즈라위, 더리흐트와 다시 한솥밥을 먹게 되었을 때 리버풀은 아쉬움을 달래야 했었지만, 이달 초 선수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듯 오랜 시간 누적된 관계와 지식, 연줄 등은 여전히 리버풀에겐 중요한 자산이다.
바이언에서 흐라번베르흐의 시간은 녹록치 않았다. 전 대회 도합 33경기에 출전했지만, 선발 출전은 고작 6경기였고 총 출전 시간은 1,000분도 되지 않았다. 여기에 옵타 (Opta) 데이터에 따르면, 선수는 나겔스만과 투헬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분데스리가에서 559분의 출전 시간을 기록했고, 7개 포지션에서 뛰었다.
올 봄부터 리버풀은 일찌감치 흐라번베르흐를 여름 영입 타깃으로 바라봤었지만, 선수의 매각을 꺼려하는 바이언의 입장은 선수가 이적을 추진, 머지사이드 행만을 원한다는 의사를 드러냈던 이적시장 막판이 되어서야 바뀌었다. 그렇게 흐라번베르흐는 이적시장 마감일, 오전 6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리버풀에 도착하자마자 선수가 한 행동은 스태프들을 대면했을 때 그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구단에 전 스태프들의 사진과 이름을 요청한 것이었다.
흐라번베르흐는 샤이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와 같은 행동은 바이언 시절 선수의 모습에 대한 신상 조사의 피드백, 그리고 부족한 출전 시간에도 변치않는 태도와 행동으로 고참급 선수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던 선수의 모습과도 맞아떨어지는 행동이다.
한편 같은 날, 흐라번베르흐는 경기 날 선수단 버스가 안필드까지 가는 길을 그대로 따라가보며, 경기장 주변 주택가 외벽에 그려진 리버풀 선수들의 벽화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다.
벽화 중에서는 특히 리버풀 위민스 선수인 미시 보 커언스 (*01년생 리버풀 성골 미드필더)의 벽화가 흐라번베르흐의 관심을 끌었다고 하는데, 흐라번베르흐의 어머니도 축구 선수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선수 가족의 경우, 어머니 아레사와 여자친구 신디는 이번 주 선수의 곁에 있었고, 아버지 라이언 시니어도 토요일 울브스와의 경기 (*9월 16일) 전에는 리버풀에 들어오기로 되어있었다.
구단으로부터 다시 본래의 모습을 찾아달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흐라번베르흐는 아약스에서 굉장히 주목을 많이 받았었던 선수다. 현재 웨스트햄에서 뛰고 있는 에드손 알바레스와 투볼란치를 구성해 6번 미드필더로 뛸 때도 있긴 했지만, 클롭 감독식 4-3-3 포메이션에서 선수의 최적의 위치는 중원 좌측일 것으로 보인다.
에레디비시에서의 마지막 시즌, 흐라번베르흐는 리그 내 어떤 선수보다도 많은, 11개의 기점 패스를 기록했었다. 100번 이상의 드리블을 시도한 선수 가운데, 흐라번베르흐가 기록한 성공률 63.4퍼센트를 능가하는 선수도 현재 본머스에서 뛰고 있는 루이스 시니스테라를 제외하면 전무했다.
입단 직후부터 리버풀의 중원을 책임져야한다는 중압감이 뒤따랐던 맥알리스터, 소보슬러이와는 달리 흐라번베르흐는 보다 천천히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입지 경쟁은 치열하겠지만, 당분간은 한 주에 세 경기를 하게 되기 때문에 눈도장을 찍을 기회들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8년이 걸린 영입. 리버풀이 그 시간을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은 이제 흐라번베르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