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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짝4 0 800 2023.12.0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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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망설임은 최고의 적… 주전이든 후보든 마음껏 뛰게 했죠”[M 인터뷰]

29년 만에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염경엽 감독이 지난달 21일 잠실야구장 3루 더그아웃 앞에서 엄지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문호남 기자

■ M 인터뷰 - LG트윈스 29년만에 우승 염경엽 감독

2014년 넥센 첫 우승 놓치고

2019년 SK 이끌 땐 PO 고배

수많은 실패가 나를 만들어

3년전 감독인생 끝났다 할 때

故 정주영 자서전 읽고 감명

‘끊임없이 도전하라’ 교훈얻어

美연수·해설위원 등 뭐든 해

지도자 덕목 중 으뜸은 ‘존중’

선수들 섬기는 자세로 살 것


요즘 염경엽(55) 감독의 얼굴에 꽃이 폈다. 그는 올겨울 가장 행복한 야구인이다. 2023 신한은행 쏠(SOL) KBO리그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어진 한국시리즈에서 KT를 만나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정상에 올랐다. LG는 1994년 이후 29년 만이자, 통산 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LG에 오랜 우승 갈증을 씻어준 염 감독을 지난달 21일 잠실구장 감독실에서 만났다. 그런데 의외였다. 염 감독은 뻔한 우승 스토리나 성공 신화가 아닌 ‘실패담’을 먼저 꺼냈다. 그는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체득한 경험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또 “많은 실패의 경험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도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염 감독은 그간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앉은 ‘패배자’였다. 염 감독은 지난 2014년 만년 꼴찌팀 넥센을 이끌고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넥센은 시리즈 전적 2승 2패로 맞선 5차전 9회 말 1사에서 나온 유격수 강정호(은퇴)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이 여파는 매우 컸다. 이어진 6차전에서 1-11, 대패를 당했다. 사령탑 데뷔 첫 우승을 노렸던 염 감독은 퉁퉁 부은 얼굴로 인터뷰했고,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2019년엔 SK(현 SSG)를 이끌고 정규리그에서 88승 1무 57패(승률 0.615)를 올렸다. 88승은 SK의 팀 창단 최다승이었다. 하지만 역시 88승 1무 57패를 기록한 두산과 맞대결 성적에서 뒤져 정규 시즌 2위로 밀려났다. SK는 가장 먼저 80승 고지를 밟고도, 9경기나 뒤처져 있던 두산에 역전을 허용해 정규리그 우승을 내줬다. 그리고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키움을 만나 허무하게 0-3으로 무릎을 꿇었다. 염 감독은 2020년엔 성적 스트레스로 경기 도중 쓰러졌고, 결국 시즌 뒤 쫓겨나듯 SK를 떠나야 했다.

염 감독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프로야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연수 코치 기회가 왔고, 주저 없이 짐을 쌌다. 미국행 비행기에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다시 꺼내 읽었다. 정 명예회장의 자서전은 염 감독 인생의 지침서다. 이날 인터뷰 중 염 감독은 책상에 꽂혀 있는 정 명예회장의 자서전을 꺼내면서 “당시 주변에선 ‘감독 염경엽은 끝났다’고 했다. 무척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이 떠올랐다. 현대에서 현역으로 뛸 때 정 명예회장과 인연이 있다. 그리고 정 명예회장의 자서전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숱한 시련에 봉착했으나 실패에 빠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라’는 가르침이 나의 모토가 됐다. 이게 내가 실패를 경험하고도 다시 일어선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틈틈이 정 명예회장의 자서전을 꺼내 보면서 깨달음을 얻는다. 선수들에게도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미국을 다녀온 뒤에는 KBSN스포츠 해설위원,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 등으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더 뛰어다녔다. 야구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뭐든 다 했다. 염 감독은 “지난 2년의 세월이 내게 엄청난 도움이 됐다. 2년을 쉬면서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됐다. 나의 프로야구 32년을 다시 정리하고, 어떤 것들이 잘됐고, 잘못됐는지, 포스트시즌에선 왜 약했는지를 생각했다. 노트도 다시 정리하면서 나를 돌이켜 봤다. 그 시간이 지금의 성공을 만든 것 같다”고 웃었다.

지난해까지 28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LG에 염 감독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염 감독은 자신의 성격부터 바꿨다. 넥센과 SK 사령탑 시절 염 감독은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경기가 시작되면 염 감독의 얼굴은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큰 스트레스였다. 속내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에 진 날이면 숙소에 들어가 식음을 전폐한 채 ‘왜 졌는지’를 복기했다. 잠을 못 이뤘고, 건강이 나빠졌다. SK에서 건강을 지키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이유였다. 하지만 올핸 달라졌다. 극적인 승리가 나오면 환하게 웃고, 그라운드로 달려나가 선수들을 얼싸안았다. 경기가 풀리지 않거나, 작전 실패가 나오면 소리도 치고 화도 냈다. 염 감독은 “벤치에서 선수들이 나를 어려워했다. 포커페이스 때문이었다. 벤치 밖에서 아무리 잘해줘도 선이 있었다. 그래서 올핸 바꿨다. 내가 화를 내는 모습이 화제가 되고, 주변에선 왜 그러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이게 선수들과 소통하는 데 더 힘이 됐다. 지금은 오히려 선수들이 더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게 우리가 견고한 ‘원팀’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귀띔했다.

염 감독은 타고난 전략가다. LG는 전력이 강한 팀이었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뛰는 야구’를 접목했다. 염 감독은 코치 시절부터 주루의 달인으로 불렸다. 타 구단 감독과 코치 시절, 주루 플레이를 연구하느라 새벽 1시 이후에 퇴근한 적도 부지기수다. 뛰는 야구는 LG를 바꿨다. LG는 올해 도루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166개)에 올랐다. LG의 올해 경기당 평균 도루 수는 1.15개. 10개 구단 중 도루 1개가 넘는 팀은 LG가 유일했다. 그런데 많이 뛰는 만큼 주루사와 도루사도 많이 나왔다. 시즌 초반엔 “그만 좀 뛰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염 감독은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리그에서 가장 큰 야구장인 잠실구장에선 ‘발야구’가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염 감독은 “LG에 와서 가장 크게 강조한 것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라’였다. 망설임과 초조함을 없애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뛰는 야구가 필요했다. 우리 팀에서 누구든 나가면 뛴다는 인식이 상대를 긴장하게 했다. 상대 배터리의 실투를 유도하는 효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염 감독은 중앙집권적 관리를 선호하지만, 선수단엔 한없이 자상하다. 염 감독은 부임 후 더그아웃 뒤편과 라커룸에 ‘두려움과 망설임은 나의 최고의 적이다’라는 문구를 적었다. 염 감독은 “기술적인 부분보다 잘하는 선수는 더 잘할 수 있게, 못하는 선수들은 잘할 수 있게 만드는 직업이 감독이다. 내 역할은 주전이든 후보든, 잘하든 못하는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사기는 저절로 높아진다. 그러다 보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조직은 잘 돌아가게 된다. 그 문구를 적은 게 선수단의 색깔까지 바꾼 배경이 됐다”고 강조했다.

염 감독에겐 수백 통의 전화가 쏟아졌다. 염 감독은 핸드폰을 꺼내 통화 목록을 보며,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제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 염 감독은 “우승하고 SK 시절 한솥밥을 먹은 최정과 한유섬이 먼저 전화가 왔더라.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감독과 선수 사이 관계가 쉽지 않은데, 그만큼 선수들에게 가깝게 다가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도자의 덕목 중 으뜸은 존중인 것 같다. 내가 존중받으려면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아랫사람이라고, 선수라고 가벼이 여기면 존중받을 수 없다. 선수들을 섬긴다는 자세로 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년에도 LG가 최강이라는 소리를 듣겠다”고 다짐했다.

LG 선수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T와의 KBO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승리, 우승을 확정한 후 마운드에 모여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가 이 정도다’ 자만심 경계해야… 피나는 노력한 신민재, 팀의 상징 같아”

■ 염감독이 말하는 좋은 선수


염경엽 LG 감독은 늘 자신을 낮춘다. ‘일이 잘 풀릴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는 게 인생의 지론이다. 염 감독은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하고도 “올해 어려운 상황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선수들은 하나가 되어 이겨냈다. 우리 선수들이 모두 열심히 했다. 나는 운이 좋은 감독”이라고 선수단에 공을 돌렸다.

특히 염 감독은 팀 내 베테랑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염 감독은 “주장인 오지환과 김현수, 박해민 등이 경기장 안과 밖에서 후배들에게 조력자 역할을 자처하며 팀을 도왔다. 야구단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시스템이다. 선배는 솔선수범하면서 후배를 끌어주고, 후배는 이런 선배를 믿고 따르면 된다. 어려운 고비를 함께 이겨내면 팀은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염 감독은 LG 우승에 공헌한 수많은 선수 중 신민재를 콕 찍어 칭찬했다. 염 감독이 LG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신민재의 운명이 확 달라졌다. 신민재는 지난해까지 대주자 요원으로만 뛰었다. 그러나 적극적인 주루를 강조하는 염 감독이 지휘봉을 잡아 신민재의 빠른 발이 다시금 주목을 받았고,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찼다. 지난 수년간 LG의 고민이 한순간에 해결됐다. 염 감독은 “(신)민재는 인생이 바뀌었다. 내가 이곳에 다시 와서 강조한 것은 ‘나만의 특별함을 만들어라’였다. 신민재는 2루 포지션이다. 2루에서 신민재가 특별한 이유는 특유의 파이팅, 그리고 빠른 발이다. 막연히 ‘내가 어느 정도 된다’는 자만심을 경계해야 한다. 신민재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1등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것이 바로 잘되는 팀의 전형이다. 올해 LG의 우승이 이렇고, 우리는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신민재는 팀의 상징적인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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