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 있어 모든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없다.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요동치는 그라운드 위에서 표류하지 않으려면 선수단, 구단 프런트, 팬심이 모두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며, 이 모든 노력의 균형을 잡아는 과정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리더'의 역할이다.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무작정 조직을 끌고만 가는 게 아니라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는게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자연스럽게 조직 내 리더십과 팔로워십의 선순환을 이끌어 위기 속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올 시즌 제주유나이티드(이하 제주)가 그랬다. 마치 위기의 터널을 계속 통과하는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개막 후 5경기 연속 무승(2무 3패)의 부진으로 강등권까지 추락했던 제주는 6라운드 첫 승을 수확한 이후 5연승 포함 8경기 연속 무승(6승 2무)을 질주하며 리그 2위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이후 17경기(1승 4무 12패)에서 단 1승만 거두는 데 그쳤고 결국 남기일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순위는 강등의 그림자가 보이는 9위. 어느새 2019시즌 강등의 악몽까지 떠오르기 시작했다. 최악의 순간, 제주의 선택은 바로 정조국 감독대행이었다. 구단은 제주에서의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 생활 동안 선수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 능력을 인정받았고, 기존 코치진과 협업을 극대화할 수 있어 침체된 분위기를 빠르게 쇄신하는 적임자로 판단했다.
정조국 감독대행은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빠르게 선수단 재정비에 나섰다. 리그 최상의 수준에 달하는 전력의 무게는 여전했다. 결국 선수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관건이었다. 그가 생각한 리더십의 출발점은 다름아닌 '팔로워십'이었다. 우선 막강한 권위 대신 감독이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수단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 구단 프런트, 팬들과 개방적 소통과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많은 교감을 나눴다. 결과에 대해선 책임지되 제주의 모든 구성원을 철저히 신뢰했다. 실제 정조국 감독대행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던 단어는 바로 '믿음'이었다. 구단 역시 신중하게 차기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을 밟으면서 정조국 감독대행이 2023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던 제주는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정조국 감독대행 부임 이후 1승 2무 3패. FA컵 결승 진출 좌절. 언뜻 보기에 제주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단생산사(團生散死)'의 정신으로 예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은 팀으로 변모했으며, 경기장에서 지켜본 팬들의 이러한 진심과 열정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조국 감독대행 부임 이후 치른 홈 4경기에서 평균 5,439명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 관중 3151명. 성적 부진과 추운 날씨를 감안해도 무려 2배에 가까운 증가율이다.
정조국 감독대행은 이조차도 믿음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부응하고 싶었던 정조국 감독대행은 올 시즌 마지막,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최종전을 앞두고 선수들과 함께 서로를 믿으며 자신감을 들이쉬고 나약함을 내쉬고 있었다. 정조국 감독대행은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제주에게 필요한 건 리더십이 아닌 팔로워십이었다. 감독대행 이후 내가 강조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선수들을 찾아가서 대화도 나누고 하면서 오히려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 나도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믿음의 결실이 조금씩 그라운드 위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는 끝까지 선수들을 믿고 따르겠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정조국 감독대행과 일문일답
- 처음 감독대행을 맡았을 때는 어땠나?
"감독대행을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나서 3일 동안 거의 3kg 빠졌을 정도로 부담이 컸었다. 개인적으로 책임감이 강한 타입이다. 수석코치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민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선수단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를 잘 믿고 따라줬다. 선수들과 더 깊게 소통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부분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뼈 때리는 이야기도 들었고, 잘해왔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아니라고 느끼게 됐다."
- 지휘봉을 잡으면서 가장 강조했던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을 따르는 법을 알지 못하는 자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단 선수들을 믿고 따르는 데 집중했다. 나를 따르라가 아닌 내가 믿고 따른다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막상 시작하니 오히려 한결 편해졌다. 선수들을 찾아가서 대화도 나누고 하면서 오히려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 선수들이 좋은 이야기들도 많이 해주고, 팀에 건강한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자유도 많이 줬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책임도 분명히 주면서 다시 좋은 팀 분위기가 형성됐고, 제주의 모든 구성원들이 혼연일체로 한 방향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를 잘 아는 남기일 감독님께서 잘할 거라고 좋은 말씀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
- 1부리그 잔류에 성공했지만 성적표는 여전히 아쉬울만 한데.
"선수들에게는 큰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나는 감독 자리를 경험하려고 여기에 있는 건 아니다.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 구단에서도 단순히 나에게 경험치를 쌓게 하려고 대행 자리를 맡긴 건 아닐 것이다. 이에 책임감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을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연스레 선수들은 모두 위기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제주는 더 전진해 나가야 한다. 올해 위기를 잘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선수단, 제주 모든 구성원이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처절하게 뼛속 깊이 팀을 돌아봐야 한다. 나도 내 역할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 FA컵 결승 진출 좌절이 가장 아쉬울 듯 하다.
"맞다. 정말 FA컵 우승을 간절하게 원했다. 평일 경기인데도 제주팬들이 정말 많이 찾아와주셨는데 정말 죄송스러웠다.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진출이 가장 목표였기에 상실감도 컸다. 그래도 선수들은 정말 간절하게 뛰었다. 그 부분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경기 후 선수들과 팬들에게 책임은 오롯히 내가 진다고 말했고, 끝까지 서로를 믿고 뛰자고 말했다."
- 이러한 '찐심'이 팬들을 더 열광케 만드는 것 같다. 감독대행 부임 이후에도 팬들이 변함없는 응원과 사랑을 보내주고 있는데.
"올해 정말 무한한 사랑 받았다. 유독 더 많은 팬이 찾아주셨다. 우리의 진심이 팬들에게 다시 닿고 있다는 점이 정말 뭉클하고 기분이 좋다. 홈 최종전에서 승리를 선사하지 못해서 정말 안타까웠다. 다가오는 수원FC와의 최종전에서 많은 원정 응원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웃으면서 돌아가실 수 있게 선수들과 최선을 다하겠다. "
- 이정도면 선수단과 팬을 모두 아우르는 최고의 조율사가 아닌가 싶다.
"단기간에 체질을 빠르게 바꿀 수 없다. 조련보다는 조율이 중요하다고 봤다. 감독대행 부임 이후 우리의 단점은 흐릿하게 우리의 장점은 더 뚜렷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전술 운용도 마찬가지였다. 뭐 이런 축구를 하겠다, 이런 색깔을 입히겠다라는 것은 조금 오만인 것 같았다. 어떻게하면 선수들의 장점을 어떻게 살려볼까. 또 선수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 까에 중점을 두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에게 밸런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그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균형과 조율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인드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줬다."
- 라인업 구성도 이러한 조율의 철학이 묻어나는 것 같은데.
"훈련장에서 최상의 열정과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 그게 곧 승리를 위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그동안 기회를 받지 못한 선수들도 다시 주목했다. 조나탄 링과 송주훈이 대표적이다. 경기를 많이 뛰면 이들의 폼이 좋아질 것이라 믿었고 스스로 경기력 향상으로 증명해주고 있어서 기쁘다. 구자철은 다른 케이스였다. 구자철은 여기서 끝이 아니고, 내년에도 더 많은 역할을 해야될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인내를 하고 내년을 준비하는게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구자철도 충분하게 이해를 한 상황이고, 잘 받아들여줬다. 구자철 이 경기장에서 뛰지는 못하지만, 경기장 밖에서, 또 라커룸에서 굉장히 많은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고, 분명히 역할을 해주고 있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내년에 더 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현재 K리그1 무대에 감독대행이 많다. 특히 현역시절부터 절친한 사이라서 많은 교감과 도움을 받을 것 같은데.
"(염) 기훈이 형과도 가끔 통화하고 (김)진규는 워낙 자주 연락한다. 어렸을 때 많이 챙겨줬던 친구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며 의지하고 있다. 능력 있는 선배이자 친구들이다. 팬들이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감독으로서 많이 고민하는 걸 보면서 나도 많이 배운다."
- 올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다. 본인이 그리는 마지막 엔딩은 어떤 것인가?
"팬들이 원하는 해피엔딩(HAPPY ENDING)은 아니지만 다음 시즌, 더 나아가 제주의 미래를 위한 해피앤딩(HAPPY ANDING)이 될 수 있는 순간이다. 제주는 어려울 때 더욱 뭉친다. 그리고 믿음의 힘은 여전히 발전의 초석이 되고 있었다. "남은 경기를 잘 마무리해야 미래가 또 보인다. 선수들끼리 뭉쳐서 마무리에 집중하려 한다. 최종전에서 팬들이 즐거워할만한 소중한 선물을 선사하고고 싶다. 바로 승리다. 강등의 뇌관을 쥐고 있다는 환경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승리만 생각하겠다. 이번 경기에서도 꾸릴 수 있는 최정예의 베스트11을 데리고 나갈 생각이다. 저와 제주의 선택은 언제나 최선이었고 이번 경기에서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