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훈 수원삼성 감독대행. 2023.12.2/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선수 은퇴식을 하기도 전에 '강등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먼저 붙었다. 수원 삼성과 K리그의 레전드로 평가받는 염기훈(40)의 현역 마지막 경기는 안타까웠다.
염기훈은 지난 9월 김병수 감독과 결별한 수원삼성의 '감독대행'으로 부임했다. 이후 염 감독대행은 약 3개월 동안 팀 잔류를 목표로 팀을 지휘했는데 지난 2일 강원FC와의 최종전서 0-0 무승부를 기록, K리그1 12위로 강등이 확정됐다. 앞선 2경기에서 짜릿한 승리를 챙기며 잔류 희망을 키웠으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수원은 1995년 창단 후 처음으로 2부리그로 떨어지는 굴욕을 맛봤다.
이미 '기울어진 배'의 선장을 자처했던 염 감독대행에게 강등의 모든 책임을 묻는 건 가혹하다. 그래도 어쨌든 염기훈이라는 지도자의 커리어 첫줄은 '강등'으로 적히게 됐다. 심지어 염 감독대행은 올해도 선수로 경기를 뛴 현역이다. 정식 은퇴도 하기 전에 붙은 '강등 감독' 타이틀은 그래서 더 안타깝다.
염 감독대행은 수원이 자랑하는 간판스타다. 2010년 수원에 입단한 이후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줄곧 수원에서만 뛰며 FA컵 3회 우승을 일궜고, 팀의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를 맡으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0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9 KEB하나은행 FA컵 결승 2차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대전 코레일의 경기에서 승리한 수원 이임생 감독과 염기훈이 우승 트로피를 주고받고 있다. 이날 경기는 수원이 4대0으로 승리했다. 2019.11.10/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수원 팬들의 사랑도 각별했다. 팀이 갈지 자 행보를 멈추지 않아 구단 프론트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거나 일부 선수들에게 질타를 보냈을 때도 '선수 염기훈'에게는 언제나 존중을 표했다. 그의 등번호 26번은 수원에겐 너무나도 특별한 숫자다.
올해 필드 플레이어 최고령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염기훈은 K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레전드 중 한 명으로 불릴 만하다. 2006년 전북 현대에서 데뷔한 이후, 445경기 77골110도움을 기록했다. 110개의 어시스트는, K리그 통산 도움 1위다.
당초 염 감독대행은 지난 시즌을 마친 뒤 명예롭게 축구화를 벗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팀이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내몰리며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탓에, 은퇴를 번복하고 한 시즌 더 팀에 보탬이 되기로 했다.
그러나 올해도 달라진 건 없었다. 오히려 더 악화됐다. 팀은 시즌 내내 다이렉트 강등을 의미하는 최하위를 전전했다. 결국 은퇴식을 앞둔 '선수'는 '기적을 쓰라'는 중책까지 맡게 됐다. 하지만 결과는 강등이었다.
수원 팬들의 자부심인 염기훈이 수원이 처음으로 강등 당하는 순간 사령탑으로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수원에서 13년, K리그에서 17년을 뛴 레전드가 그라운드에서 맞이한 마지막 장면이다.
염기훈 수원삼성 감독대행. 2023.12.2/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2부로 강등된 수원은 앞으로 다양한 문제와 직면하게 됐는데, 염 감독대행의 거취 역시 큰 고민이다.
향후 수원의 지도자가 될 것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온 염 감독대행이지만 역시 '강등 감독' 꼬리표가 있어 상황이 모호해졌다. 그렇다고 마지막 3개월 때문에 13년을 함께한 레전드를 벌써 내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
염 감독대행은 "어디서 다시 시작할지 모르겠지만 지도자의 꿈은 계속 갖고 나갈 것"이라면서 "구단과 향후 일은 다시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한다. 수원에 남든, 아니면 다른 팀으로 가더라도 계속 지도자의 삶을 살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레전드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긴 시간이 쌓여야 하고 그 시간 안에서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낼 업적이 쌓여야 비로소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 전설적인 선수가 지도자라는 '제2의 축구인생'을 고개 숙인 채 시작하게 됐다. 결과론적이지만, 지휘봉을 잡기 전에 염기훈 그리고 수원삼성의 선택은 더 신중했어야했다는 지적과 아쉬움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