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은 낯선 일이 아니었다.
다른 사무실 쪽에서
직원이 시재금을 들고 튄 사건은
이미 여러 번 들은 적 있었다.
야간에 충전 이벤트를 진행한다음
충전금을 모조리 들고 튀는 방법이나
시재가 들어있는 계좌들을 터는것
그게 제일 흔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무실에선
그런 식으로 시재를 통째로 들고 간 경우는 없었다.
대신 더 자잘하고 치사한 방식으로 사라진 애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총괄 형님의 시계를 들고 튀었다.
누군가는
직원 명품 신발과 옷 또는 악세사리
밤 사이에 몰래 챙겨 나갔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근데 아침이 돼도 그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도 못한다
여기서 경찰은
우리를 보호해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린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으로만 움직였다.
그날 이후
사무실 분위기는 하루 이틀 조용했고,
사라진 사람 이야기는
몇 번 오간 뒤 완전히 잊힌 것처럼 덮였다.
도윤은 그걸 보며 느꼈다.
“믿을 사람은 없다”는 말이,
이 조직 안에서는 그냥 전제가 되어 있는 문장이라는 걸.
일을 잘하든 못하든,
오래 있었든 말든—
하룻밤 사이에 그냥 사라질 수 있는 게 여기의 룰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조심하게 됐다.
더 계산적으로 움직이게 됐고,
언행 하나, 질문 하나도
한 번 더 삼키고 뱉게 됐다.
사라진 직원 얘기는
며칠 지나자 더 이상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그게 이 바닥 방식이었다.
사라진 사람은 그냥 ‘없는 사람’이 되는 것.
잡으러 가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는다.
그게 오히려 모두를 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 사람이 나랑 몇 번 같이 야식을 먹었고,
같이 배당 수정하면서 욕도 하고 웃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나니,
그 사람의 이름조차 금기어처럼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람을 조금 더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예전엔
형들이 무슨 농담을 하든 편하게 웃었고,
야식 시키면 먼저 주문을 맡았고,
야구 중계 틀어놓고 같이 떠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웃음 속에 의심이 섞였다.
‘이 사람은 언제까지 있을까?’
‘저 웃음 뒤엔 뭐가 있을까?’
‘혹시 나도, 누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사무실은 똑같이 돌아갔다.
모니터는 켜져 있고,
배당은 움직이고,
문의는 계속 쌓였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일은 여전히 익숙해졌지만,
사람은 점점 어려워졌다.
무언가 물어볼 때도
눈치를 먼저 보게 됐다.
말을 꺼내기 전에
상대 기분을 살폈고,
그 사람의 눈빛을 한번 더 확인했다.
어쩌면 그게
이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밤마다 혼자 소파에 누워
폰 화면을 멍하니 보다가
생각이 들곤 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믿고 있는 걸까.’
총괄 형님?
선배?
같이 일하는 형들?
아니면,
아무도?
결국 내가 믿어야 할 건
내 일, 내 손, 내 판단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난다.
그 달 월급은 500만 원.
그리고 지분 수익까지 합쳐서
약 1,250만 원.
처음 이 금액을 받았을 땐
심장이 좀 뛸 정도로 기뻤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고 나니
느껴졌다.
이게 이 일에서 직원으로서 벌 수 있는 한계구나.
도박 사이트라는 구조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경기 등록, 배당 수정, 회원 응대, 시스템 관리…
하루에도 수백 개의 클릭과 판단이 있었고,
실수는 없었고,
평가는 좋았고,
총괄 형님한테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돈은 일정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직원으로선
벌 수 있는 돈이 딱 ‘천에서 이천’ 사이.
그 위로 가려면
포지션이 바뀌어야 했다.
어느 날 선배가 말했다.
“도윤아, 총판 하면 너 스타일이면 잘할 것 같은데.”
“총판이요?”
“응.
직원은 그냥 월급 받고 일하는 거고,
총판은 자기 사무실 따로 차려서
회원 끌어오고, 유입 시키는 쪽.
진짜 돈 되는 건 그쪽이야.”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싶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무실 안을 둘러봤다.
누군가는 형님의 신발을 들고 도망갔고,
누군가는 명품 시계를 챙겨 사라졌다.
믿는 사람도, 오래 본 사람도
돈 앞에선 쉽게 무너졌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직접 운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사무실을 하나 차리고,
거기 있는 사람들도
직원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지인들’로 꾸리면.
적어도
물건을 들고 튀거나,
시계를 훔쳐가는 일은 없을 테니까.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할수록
생각은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내가 계속 직원으로 남아 있다면
몇 년이 지나도
벌 수 있는 돈은 뻔할 거고,
누군가 실수하거나 사라질 때마다
같이 뒤집어쓰는 건 나일 테니까.
내가 중심이 되면,
최소한 결정은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그게 어느 날부터
욕심이 아니라 계획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직원으로선 보이는 돈만 만지고,
운영자로선 숨은 판을 짤 수 있다.
나는 그 경계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제,
어디로 넘어갈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6화..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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