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졌다는 말은
그냥 덜 떨린다는 뜻에 가까웠다.
농구 배당 수정할 때,
마우스 커서가 덜 흔들리고
마감할 때 손이 조금 더 정확해졌다는 거.
그걸 느끼기까지
딱 2주가 걸렸다.
선배는 내가 중간에 뭐라도 실수할까 봐
늘 뒤에서 모니터를 힐끔거렸는데,
어느 순간부턴 그냥 자기 자리에서 일만 하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제 날 신뢰하기 시작했구나.’
그 신호는 일상 곳곳에 묻어 있었다.
야구 등록 시간에
형 하나가 다가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도윤아, 이건 네가 해.
너가 요즘 실수도 없고 제일 빠르더라.”
그게 칭찬이든,
일을 넘기는 핑계든 상관없었다.
맡길 수 있다는 말 자체가
내겐 의미 있었다.
그날 저녁엔
총괄 형님이 KTV를 가자고 했다.
평소처럼 몇 명이 조용히 따라 나섰고,
나도 말 없이 따라갔다.
룸 안에 앉아 있었을 때
형님이 내 쪽을 한번 슬쩍 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도윤이, 요즘 잘하더라.
보고 있다, 계속.”
짧은 한마디.
근데 그게 묘하게
기분을 들뜨게 했다.
업무적으로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엔 정해진 업무만 맡았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의 업무를
백업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자리에 없을 땐
그 사람 대신 입금 확인을 해주고,
문의 응대도 내가 알아서 정리했다.
특히 배당 수정 쪽은
형들이 다소 피곤하거나 집중 안 될 때
내게 넘기는 경우도 많아졌다.
“도윤아, 지금 오즈 바뀌었는데 수정 좀.”
“야구 기준점 내려갔어. 확인해줘.”
이젠 내 손에 달린 게 많아졌고,
그만큼 책임감도 커졌다.
하지만 편해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신중해야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커질수록
실수 한 번에 나락까지 갈 수 있는 가능성도
같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전보다 한 번 더 확인했다.
마감 버튼 누르기 전에
다시 한 번 점수 확인.
배당 수정하기 전엔
세 군데 이상 비교.
경기 시간 다가오면
미리미리 등록하고, 오류 없나 다시 체크.
‘누군가의 돈이 걸린 일’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았다.
수습 끝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한 형이 나에게
조용히 담배 하나를 건넸다.
“이제 완전히 자리 잡았네.”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런가요?”
“응. 이제 너한테 뭐라 할 사람 없어.
실수만 하지 마라. 그럼 계속 간다.”
그 말이 뇌리에 남았다.
‘계속 간다.’
그게 무슨 뜻일까.
이 일에서 계속 간다는 건 뭘까.
돈일까. 신뢰일까.
아니면… 다른 말일까.
그날 밤,
모니터를 바라봤다.
경기 등록창, 배당 수정창, 문의 목록.
이제 이 모든 화면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편하진 않았다.
이 일은 원래
익숙해질수록 더 위험한 일이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평소처럼 일과가 흘렀다.
도박사이트 관리자 페이지를 열고,
배당을 수정하고,
오류 없는지 점검하고,
문의 응대 몇 건 처리하고,
오후엔 야구 경기 등록까지 마치고 나니
시간이 훅 지나 있었다.
그렇게 평온해 보이는 하루였지만,
사무실 안 공기는 묘하게 달랐다.
선배가 폰만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고,
다른 형 하나는 말없이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무실에 있었던 직원 한 명이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말 없이 사라졌다는 건
이 바닥에선 그냥 ‘도망갔다’는 뜻이었다.
5화..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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